수경재배를 시작할 때, 그 길을 먼저 걸어 본 태환이형이 농부들에게 감사하게 될 거라고 했는데, 그 말씀이 딱 맞았다. 식물을 기르는 게 쉽지가 않다. 동물은 즉각적으로 반응을 하고 감정이나 불편함 등을 표현하지만, 식물은 뭔가가 안 맞으면 비실비실거리고 제대로 안 자라고 하는 반응이 오기까지 시간이 꽤 오래 걸려서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아닌지 가늠하기가 아주 어렵다.


지난번에 글을 올린 지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가고 있는데, 그동안 그다지 크게 진척이 없다. 잎들은 계속 엄청 비실비실하고 자꾸 웃자라고 옆으로 눕는다. 식물을 잘 키워본 일이 없어서 웃자란다는 게 뭔지 좀 잘 몰랐는데, 얘네가 조건이 잘 안 맞으니 튼튼해지지 않고 가늘고 얇고 길게 자라난다. 마치 콩나물처럼. 


(왼쪽) 왼쪽에 있는 건 수퍼에서 산 적치마 상추. 크고 두껍고 아름답다. 오른쪽 건 우리 베란다에서 얇게 웃자란 잎들을 딴 것. 어찌나 얇은지 잎이 피부에 착착 달라붙을 정도다. (가운데) 틈틈이 새로 싹을 틔우고 포트에 옮겨서 수경재배 필드에 추가했다. 지금은 세 층, 48개의 구멍이 거의 다 찼다. 보면 웃자라서 힘이 없어서 화분 옆으로 누워 있는 게 대부분이다. 창 밖으로 내려다 보이는 주말농장의 작물들은 저리 튼튼하게 자라는데... (오른쪽) 아직 모종을 키우던 시기. 왼쪽은 싹 튼지 얼마 안 돼서 물만 주면서 키우는 통, 오른쪽은 좀 더 커서 배양액을 넣어서 키우는 통이다. 잎이 나기 시작하면서부터 강한 빛을 보지 못하면 웃자란다고 해서 재배등을 비춰주고 있는 모습이다.


웃자람의 원인을 찾아보니 배양액 농도가 안 맞거나, 빛이 너무 약하거나 기온 또는 양액 온도가 너무 높거나 하면 그렇게 된다고 한다. 일단 배양액 농도는 샤오미 수질 측정기로 재 보면 권장 농도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으니 제외하고, 기온도 지금이 한여름이 아니어서 적절한 시기니 제외해도 되고, 결국은 광량이 남는다. 확인해 보니 지금 수경재배기를 설치한 베란다에 직사광선이 들어오는 게 오후 2-3시 까지 밖에 안 되는 것 같다. 오후 시간 동안은 해가 옆 동 뒤로 숨어서 간접광 밖에 받지 못한다. 간접광도 일상생활하는 데는 충분히 밝지만, 식물이 자라는 데는 직사광선과 간접광 차이가 생각보다 아주 크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유리도 옥상에서 줄 타고 내려오면서 닦지 않으면 깨끗하게 닦을 수 없는데, 은근히 먼지 같은 걸로 더러워져서 광량을 많이 잡아먹는다.


식물을 재배하기 위한 조명으로는 전력에 비해 광량이 많이 나오는 조명을 써야 하는데, HID 램프(고강도 방전등), 형광등, LED 등을 주로 사용한다. 이 중에서 소규모 설치가 비교적 간편하고 유지보수도 편하고 수명이 긴 LED를 쓰기로 했다. 재배등으로 그냥 백색광을 쓰기도 하고, 엽록소의 흡수 스펙트럼에 맞춰서 적색과 청색 LED를 섞어서 쓰기도 하는데, 나는 적색 LED와 청색 LED가 3:1로 섞인 (적청) 재배등과 색온도가 조금 낮은 “따뜻한 백색” LED를 주문했다. 적청 재배등은 좀 싸게 파는 판매자 재고가 10개만 남았어서 두 판매자한테서 각각 10개씩 총 스무 개를 샀다. 물건을 받아 보니 한 쪽에서 보내온 건 LED 막대의 한 쪽에만 전선이 두 가닥 있고, 다른 한 쪽에서 보내온 건 양쪽으로 RCY 커넥터로 마감된 전선이 나와있다. 후자 쪽은 직렬로 줄줄이 연결하기에 아주 좋다. 적청 재배등은 모두 IP68 방수 제품이었는데, 스무 개 합쳐서 63불 정도 줬다. 따뜻한 백색 LED 막대는 방수는 아니고, 그냥 알루미늄 프로파일에 LED만 조립되어 있다. 전선도 그냥 한 쪽으로만 연결되어 있는데, 대신 이건 방수처리가 되어 있지 않아서 LED 스트립에 바로 납땜이 가능하기 때문에 줄줄이 연결하기가 별로 불편한 건 아니다. 20개에 40몇 불 정도 준 것 같다. 전부 이베이에서 샀는데, 중국에서 발송되었고 시간이 1-2주 걸리긴 했지만 배송료도 없이 싸게 잘 샀다.


재배등 조명에서 찍어서 뻘겋게 나왔다. (왼쪽) 양 끝이 RCY 커넥터로 마감된 방수 적청 재배등. (10개 샀다.) (가운데) 한 쪽 끝에만 전선이 나와있는 방수 적청 재배등 (10개 샀다.) (오른쪽) 한 쪽 끝에만 전선이 나와있으나 납땜으로 줄줄이 연결할 수 있는 백색 LED 막대. 방수는 아니다. 20개 샀는데, 적당히 조명용으로도 쓸까 생각중이다.


내가 산 LED 막대는 전부 길이가 50 cm 정도 되고 너비는 1.5 cm 정도, 두께는 4-5 mm 정도 되는 것 같다. 알루미늄 프로파일 안에 LED 스트립이 들어가 있는데, 12 V를 입력 받고, LED는 총 36개 들어가 있다. LED는 전부 SMD 5630 규격이다. 조명용 SMD LED는 3528, 5050, 5630, 이렇게 세 가지 규격을 많이 쓰는 것 같은데, 5050이 3528에 비해 2-3배, 5630은 5050에 비해 다시 2-3 배 정도 광량이 강하다.


귀찮아서 제대로 안 달고, 전원에 연결된 재배등 한 개를 행거에 대충 걸어서 빛을 비추고 있는 모습.


LED랑 전원 공급기가 다 오고 난 후에도 게을러서 처음에는 일단 테스트용으로 적청 재배등 하나만 12볼트 전원 공급기에 직접 연결해서 써 봤다. 첫 번째 사진 중 오른쪽에 있는 사진을 보면 재배등으로 모종을 비추고 있는데, 그 때 사용한 게 그렇게 테스트용으로 연결해본 재배등이었다. 위 사진에서도 그 재배등을 행거에 대충 걸어서 빛을 비추고 있는데, 이렇게 해 놓고 보니 정말 빛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정도로 웃자라는 걸 막을 수 있을지 제대로 테스트해 볼 만큼 오래 써 보진 않았지만,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하자 싶어서 큰 맘 먹고 일요일 오후에 한참을 뚝딱거려 봤다.


참쉬운수경재배에서 구입한 수경재배 필드는 길이가 1 m 정도라서 LED 막대 두 개를 이어야 필드 하나를 다 비출 수 있다. 적청 중 양쪽에 RCY 커넥터 달린 거 하나랑 한 쪽에 전선만 달린 거 하나를 연결하기로 했다. 이러면 한 쪽 끝에 있는 RCY 커넥터를 통해서 LED 막대 두 개에 전원을 공급할 수 있다.



전선 연결 말고 두 LED 막대를 단단하게 고정시키는 게 더 까다로웠는데, 재활용쓰레기장에 있던 가구에 쓰였던 나무조각을 집어와서 톱질을 한 다음, 나사못을 박아서 고정시켰다. LED 막대 끝은 저렇게 나사구멍이 있는 플라스틱 부품으로 마감되어 있어서 고정시키기 좋게 돼 있다. 기계적으로 고정하는 부분이나 두 LED 막대 전원을 연결하는 부분이나 지저분하고 아쉬운 점이 많지만 그냥 돈 더 들이기도 그래서 저렇게 쓰고 있다. (일단 작동은 잘 된다)


이렇게 두 개를 연결한 LED 막대를 각각의 필드 위쪽에 고정시키고 전원을 연결했다. 고정하는데도 고무줄과 나무막대를 이용해서 꼼수를 동원했는데, 엄청 허접하게 생기긴 했지만 일단 제 기능은 하고 있어서 그대로 쓰려고 한다. 혹시 여력이 생기면 알루미늄 프로파일 같은 걸로 제대로 만들어볼지도 모르겠다... LED 막대는 세 층 분량 총 12개(여섯 줄)를 다 준비해 놨는데, 전선이 좀 모라자고 해서 일단은 한 층만 설치해 보았다. 다음에 시간 되는대로 세 층 모두 완전히 설치를 해야겠다.


한 층에 LED 막대가 네 개씩 들어가는데, 하나당 전력이 대충 10-12 W 정도니까 한 층당 총 48 W 정도 전력이 들어간다. 세 층 다 돌리면 140 W 정도. 24시간 재배등을 켜면 (잎채소는 원래 24시간 빛을 쪼여서 키워도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한다) 재배등으로만 한 달 소비전력이 100 kWh 정도 나오는데, 전기요금이 누진구간에 따라 몇 천원에서 5만원 정도 추가될 수도 있다. 귀찮아서 안 하려고 했는데, 광량을 측정하고 광량이 모자라면 빛을 더해주는 회로를 만들어서 햇빛 쨍쨍한 날에는 LED를 꺼서 전력을 아껴야 할 것 같다.


일단 네 개의 LED 재배등 막대를 중간 층에만 달아 보았다. 저 사진을 찍을 때는 그래도 잎이 크게 자란 (그러나 웃자란) 화분들이 거기에 있었는데, 나중에 화분들을 재배치해서 중간 층은 유망주 (아직 보통 판매하는 모종 수준도 안 되는 것들) 위주로 채웠다.


참쉬운수경재배에서 재배등도 판매하는데, 엄청나게 비싸다. 한 층, 두 개의 필드에 빛을 비춰주는 LED 재배등이 20만원이다. 세 층 다 설치하면 총 60만원. 키트까지는 샀지만, 재배등까지는 도무지 못 살 것 같다. 가장 밝은 게 5050 LED 288개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고, 설치하기는 편하게 되어 있다. 5050 LED 288개면 광량 기준으로 아마 5630 LED 100-140개 정도랑 비슷할 것 같은데, 내가 만든 저 허접한 LED 재배등은 한 층당 5630 LED 144개가 들어가 있기 때문에 거기서 파는 것에 비해 광량이 비슷하거나 더 셀 것 같다. 참쉬운수경재배 운영자분의 블로그에서 확인한 재배등의 효과를 생각하면 우리 집에서도 자연광이 약해도 잘 자라야 할 텐데 어찌 될지 기대된다. 어쨌든, 허접해 보이긴 하지만 광량은 나쁘지 않고, 비용은 한 층에 약 15,000원 정도 든 것 같다. 물론 돈 받고 팔 만한 품질로 만들려면 가격이 많이 올라가긴 할 거다. 그래도 요즘 중국에서 소량으로 주문제작해주는 데도 많으니 그런 델 이용하면 많이 비싸진 않을 듯. (아예 막대를 1 m 정도로 길게 뽑아내고 양쪽에 전원 케이블 어느 정도 방수 되는 단자로 연결할 수 있게 하고, 알루미늄 프로파일 등을 이용해서 거치대 잘 만들고...)


그리고 아직 화분 네 개 정도 넣을 공간이 남았고, 상태가 영 안 좋아서 교체해야 할 것 같은 애들도 좀 있고 해서 발아도 다시 하고 있다. 처음부터 스펀지에 넣고 발아하는 것보다 일단 적신 천에 발아시킨 다음에 스펀지에 옮겨심어서 키우는 게 좀 더 나은 것 같다.


맨 윗줄에는 로메인 상추 씨앗 세 개, 그 다음 줄에는 로즈마리 씨앗 세 개, 그 밑에는 바실 씨앗 2개, 맨 아래에는 청경채 씨앗 다섯 개를 발아시키고 있다. 부디 잘 커 주길...

발아는 정말 힘들게 진행되고 있다. 발아 2차시도 때 적치마 상추와 로메인 상추, 그리고 네 가지 허브(바실, 파슬리, 타임, 로즈마리) 씨앗을 심었다. 아주 얕게 했는데, 적치마 상추는 100% 싹이 텄지만 나머지는 영 비실비실하다. 로메인은 70% 이상 발아가 되긴 한 것 같은데 성장이 들쑥날쑥하고, 허브는 거의 발아가 안 됐다. 타임이 조그맣게 떡잎을 내긴 했지만, 그마저도 상태가 안 좋아서 그냥 정리해 버렸다. 


그럭저럭 싹이 튼 것들은 저농도 배양액 있는 쪽으로 옮기고, 발아가 잘 안 된 것들은 스펀지를 다시 깨끗하게 씻고 새로 씨앗을 심었다. 로메인 상추는 스펀지 하나당 한 개씩 겨우겨우 스펀지 틈에 끼어있는 모양새가 될 정도로 얕게 심었고 허브도 비슷한 깊이로, 하지만 개수는 더 넉넉하게 심어 보았다.


지난번에 발아가 돼서 좀 큰 애들은 수경재배기로 옮겼다. 열 개 남짓 되는 스펀지를 수경재배 포트에 담고 난석으로 고정을 시켰다. 필드에 관들을 연결하고, 철물점에 가서 20리터들이 기름말통(원래는 주유소에서 기름 사오는 용도로 쓰는 것. 옛날에 석유보일러 쓰던 시절 난방유 배달시키면 알바 형아가 들고 오던 그런 기름통)을 5천원 주고 사와서 저울로 수경재배비료를 계량해서 집어넣고 녹여서 배양액을 20 L 만들었다. TDS 측정기로 재 보니 890  ppm 정도 나온다. 잎채소 기준 겨울철 권장 농도랑 비슷한데, 일단 좀 써 보고 세다 싶으면 물을 좀 섞어줄까 한다. 지금은 펌프를 24시간 돌리고 있고, 일주일 정도 돌려서 잔뿌리가 좀 많이 나오고 나면 타이머로 1시간에 15분씩만 순환시키면 된다고 한다. 펌프에서 소음이 많이 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공명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하면 소음은 큰 문제는 안 된다. 어차피 가족들 일상생활 공간이 아닌 베란다에 설치했기 때문에 조금 소리 나도 별 문제는 없다. 그나저나 옮겨심은 애들도 뿌리가 스펀지에 튼튼하게 박혀있지 않아 옆으로 쓰러지려고 한다. 절반 정도는 제대로 적응을 못하고 죽어나갈 것 같은 느낌이다.


발아하면서 워낙 삽질을 많이 하고 있다 보니 아내, 어머니 등 가족들이 다 저걸 언제 키우냐며 모종 사다가 그냥 하라고 난리지만, 이왕 이렇게 된 것, 오기가 발동해서 어떻게든 그냥 해 보려고 한다. 실은 살짝 의지를 꺾은 게 있는데, 코스트코에서 산 로메인 하트의 뿌리 방향 끝을 남겨서 난석으로 고정해서 수경재배기에 넣어 보았다. 이렇게 해 두면 거기서 실뿌리가 자라고 잎도 새로 나서 수확이 가능하다고 한다. 잘 나오는지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좋아 보이면 씨도 받아서 나중에 그 씨앗으로 키울 수도 있겠다.


우리 동네는 농촌에 가까운 곳이라 밭이 많은데, 일부 논이나 포도밭을 제외하면 대부분 주인들이 직접 농사 짓기 힘들어서 연회비 받고 빌려주는 주말농장이다. 베란다 밖을 내다봐도 코앞에 주말농장이 잔뜩 있다. 그 근처에서 모종도 많이 판다. 모종을 볼 때마다 그냥 저렇게 예쁘게 키워진 모종을 사다가 씻어서 수경재배하는 게 나을까 하는 고민을 한다. 인터넷에서 흙 안 쓰고 스펀지만 사용하여 수경재배용으로 기른 모종을 파는 곳도 있다. (여기) 이건 솔직히 좀 끌리긴 했는데, 하나에 4,000원이나 하니 차마 손이 떨어지지 않았다. 노하우가 쌓이면 모종을 키워서 파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수요가 꾸준히 있을지는 매우 의문이지만...


이번 글은 사진도 없이 글만 있는데, 다음에는 꼭 사진과 함께 글을 올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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