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샀던 이어폰을 수리했습니다.
크레신 LMX-E700V 이 모델명에서 맨 뒤에 있는 V는 보라색 외장을 뜻하는 것으로, 외장을 교체할 수 있는 것을 감안할 때 별로 중요한 건 아닙니다. 그냥 E700이라고들 부르죠.

국산으로는 상당한 고가의 제품(정가는 6만원대 같고... 인터넷 잘 뒤지면 4만원대 후반으로 살 수 있습니다.)이고, 소리도 아주 괜찮은 편입니다. 쿵쿵 울리는 저음을 좋아하신다면 실망스러울지 모르지만, 고음에서의 해상력은 정말 좋습니다. 전에 사용하던 젠하이저 MX400은 저음이 엄청나게 강조되는 이어폰이었습니다. 그 이어폰은 최고의 가격대비 음질로 인기를 누리던 물건인데, 저음이 상당히 빠방하면서도 전체적으로 고른 음질을 들려줘서 사람들한테 인기도 많고, 꽤 많이 팔리기도 했죠. 모 MP3P 회사에서 MX400의 하위 모델인 MX300을 번들로 채택하기도 했습니다. 번들 치고는 꽤 괜찮은 소리가 난다고들 했었죠... MX400은 MX300보다는 확실히 소리가 좋은 것 같습니다.

크레신은 우리나라 회사로, 이어폰 만든 지 상당히 오래 된 회사입니다. 일명 도끼폰이라고 불리는 이어폰으로 호평을 받았었고, 그 도끼폰도 놀라운 가격대비 성능으로 많은 사용자들에게 사랑을 받았었죠.

E700은 우선 가격이 꽤 비쌉니다. 이어폰에 5만원 정도의 돈을 쓰는 건 사실 그리 선뜻 내키는 일은 아닙니다. 저도 MX400이 우리 강아지 두리가 친 사고 때문에 망가지지 않았다면 굳이 이 이어폰을 새로 구입하지 않았을 겁니다. 비싸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포터블 기기 매니아도 아니고요...

일단 소리부터...
저음이 상당히 빈약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어떤 사람들은 전체적으로 고른 소리를 내 주기 때문에 저음이 빈약하게 들릴 뿐이라고 얘기하는데, MX400을 계속 쓰다가 이걸 써서 그런지 저음이 좀 허전했습니다. 아이팟에 번들로 들어있는 이어폰(이것도 소리 괜찮은 편입니다.)하고 비교해도 사실 저음이 약하긴 합니다. 하지만, 저음의 음량이 상대적으로 작게 느껴질 뿐, 저음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밸런스의 문제라고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런 저음의 빈약함에 비해, 고음의 선명함은 가히 예술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말 맑고, 깔끔한 고음을 자랑하죠. 바이올린 같은 악기 소리를 들어보면 정말 그 찰랑거리는 소리에 뻑 갑니다. 피아노 연주에서도 높은 주파수의 배음이 아주 잘 살아나서 또 다른 소리를 느낄 수 있습니다.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아주 깔끔하고 경쾌한 소리를 내 주는 이어폰입니다. 비싼 값을 확실히 합니다. 아주 잠깐씩 밖에 못 들어보긴 했지만, 소니의 888이나 B&O 이어폰 같은 고가의 제품하고 견줄 수 있을 듯 합니다.

그 다음, 디자인을 살펴볼까요?
사진은 저~기 아래에 제가 올렸던 글을 보시면 될텐데, 아주 좋습니다. 하지만, 이어폰 데코 부분(소리 내는 유닛하고 줄을 연결해주는 부분)이 꽤 길고, 무겁습니다. 이어폰이 귀에 아주 잘 맞지 않으면 그 무게 때문에 흘러내리는 압박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폰이 있는 미니 기기에 꽂기 좋게, 줄 길이가 일단은 짧고, 거기에다가 연결해서 상당히 길에 쓸 수 있는 연장선이 기본으로 들어있습니다. 그런데 연장선과 기본 전선을 연결하는 부분은 나름대로 가볍게 만들려고 한 것 같긴 하지만, 커넥터 무게가 있기 때문에 커넥터가 없는 것처럼 가볍게 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덕분에 그 무게가 또 압박으로 작용합니다. 전선도 싸구려 이어폰에 비해 꽤 굵은 걸 써서 무겁고, 데코 무게도 무겁고, 커넥터 부분도 무겁다 보니, 주로 힘을 많이 받는 왼쪽 이어폰이 자꾸 빠지려고 합니다. 그렇잖아도 귀가 이상하게 생겼는지 어떤 이어폰을 껴도 왼쪽이 잘 빠지는 편인데 - 이건 좌우 선 길이가 같은 걸 써도 마찬가지인 걸 보면 확실히 제 귓구멍이 좀 이상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 이 무게 때문에 꽤 자주 이어폰을 눌러 줘야 합니다. 사실 이런 문제는 조금은 제 개인적인 문제이긴 하지만, 커넥터 무게를 좀 더 가볍게 할 수 있으면 많이 좋아질 것 같고, 데코가 좀 긴데, 그 길이를 짧게 하고, 더 가볍게 만들면 쓰는 데 더 편리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근데 구입한지 서너 달 정도 지났는데 왼쪽 유닛에서 찌직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주로 피아노 곡에서 특정 음이 나올 때 찌직거리는 소리가 나서, 서비스를 받기로 했습니다.

원래 이어폰들은 대부분 소모품으로 간주하여 서비스를 안 해 주는 편인데, 크레신에서는 국내에 한해서인지 모르겠지만 무상 서비스를 해 줍니다. (하지만 사용자 과실에 의한 고장에 대해서는 유상 서비스도 안 해 줍니다. 크레신이 아니어도 이어폰 유상으로 수리해주는 업체가 있긴 합니다만 좀 아쉽죠...) 이어폰 살 때 들어 있던 보증서랑 영수증을 보내면 되는데, 인터넷으로 사서 영수증이 없는 관계로 제가 물건을 샀던 샵에 가서 구매 기록을 뒤져서 첨부해서 같이 보냈죠. 등기우편으로 1730원 들었습니다. 보낼 때는 사용자 돈으로 보내야 한다는 게 좀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무상으로 수리를 해 준다니 내 돈 내고 보내야죠. 보내고 나서 물건을 받기까지는 9일 걸렸습니다. 11월 4일에 보냈고 11월 13일에 받았으니까요. 서비스 받는 데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깔끔하게 고쳐져서 온 것 같습니다. 물건은 박스에 담겨서 택배로 왔는데, 그 안에도 이어폰과 보증서, 데코, 보낼 때 같이 넣어서 보낸 박스 등이 깔끔하게 잘 정리되어 왔습니다. 포장 상태도 꽤 만족스러웠습니다.

시간이 좀 오래 걸린다는 점과 물건을 보낼 때 배송료를 고객이 부담해야 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꽤 만족스러운 서비스입니다.

이상 간단 사용기 및 수리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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