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자전거 타고 하루에 제일 긴 거리를 움직인 건 지난 주, 3월 8일에 탔던 하트코스 확장판이었다. 100 킬로미터를 살짝 넘기는 거리에 불과했다. 15일에는 주행거리를 늘리면서도 조금 다른 코스를 타 보고 싶었다. 일단 주행거리를 늘리려면 속도 내기 좋은 길로 가야 하는데, 우리 집에서는 일단 제법 잘 뚫린 자전거길을 가려면 안타깝게도 어느 정도는 전철을 타고 나가야 한다.

지하철로 점프를 할 때는 보통 집 앞 역에서 전철을 타고 금정역이나 석수역으로 가서 가까운 안양천변 길에서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다. 과천 쪽에서 전철에서 내려서 양재천을 따라 자전거를 탈 수도 있는데, 이건 썩 마음에 들진 않았어서 앞으로 웬만하면 하진 않을 것 같다.

이번에는 처음부터 한강 자전거길에서 시작해보기로 했다. 4호선 동작역에서 내리면 전철을 갈아탈 필요도 없고 지하철역 출구에서 바로 한강으로 연결되니 좋을 것 같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7시쯤 동작역에 도착해서 자전거를 타고 한강 자전거길과 남한강 자전거길을 따라 양평역까지 갔다가 돌아오면 대략 120 km 정도 되는 것 같아서 이 코스에 도전하기로 했다. (근데 실제로는 아침에 좀 늦게 일어나서 동작역에 도착하니 이미 8시가 좀 넘었다. 이후로도 여러 이유로 속도를 잘 못 내서 계획보다 훨씬 늦게 집에 돌아왔다.) 코스 지도는 이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네이버맵 지도오늘 달린 왕복 코스. 한강 및 남한강 자전거길로만 달리는 코스로, 동작역에서 출발해서 양평 군립 미술관 인증센터까지 갔다가 동작역으로 되돌아오는 120 km를 살짝 넘는 코스다.


동작역에서 내려서 1번 출구로 나서면 바로 반포천 자전거길이 나오고, 북쪽으로 100 미터만 더 가면 한강 자전거길이 나온다. 한강 자전거길에서 동쪽으로 하염없이 갔다. 그 날 한강변에서는 서울오픈 마라톤이라는 대회가 있어서 그런지 달리기 하는 분들이 많이 있었다.

겨우내 운동을 게을리 해서 몸이 영풀리질 않은 데다가 양평까지 가는 동안 거의 쉬지 않고 바람이 계속 동풍(역풍)이어서 도무지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 전에는 암사고개를 넘어갈 때도 그냥 언덕이 좀 힘들구나 했는데, 이번에는 중간에 몇 번을 내려서 걸어가야 하나 고민을 해야 했을 정도로 몸이 엉망이었다. 컨디션 괜찮을 때는 강변 자전거길처럼 평평한 데서 탈 때는 50 km 넘게 달릴 때까지 한 번도 안 쉬어도 괜찮았던 것 같은데, 영 상태가 안 좋아서 미사대교 밑에서 헐떡거리면 한 번 쉬어야 했다. 터보 트레이너를 열심히 탈 걸 사 놓기만 하고 타지 않았던 게 진심으로 후회됐다. 이 상태로 갔다가 혹시 팔당대교 건널 때 자전거를 끌고 건너야 하는 건 아닐까 살짝 고민이 되기도 했지만, 그 정도는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3월 중순인데도 아침에는 날씨가 추운 것도 꽤 고통스러웠다. 로드용 클릿 신발은 겉보기에는 아주 딱딱한 플라스틱 같은 모양으로 당연히 방수가 될 것 같은 모양이지만 실제로는 겨울용이 아닌 이상 방수는 커녕 바람이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구조다. 아직 공기가 찬 상태에서 이 신발을 신고 자전거를 타면 발가락이 얼어서 마비되는 느낌이 든다. 미사대교 밑에서 쉬는 동안에도 발이 시려워서 신을 벗고 한참 손으로 발끝을 녹여야 했다.

팔당대교를 건너 옛 중앙선 철로를 따라가는 자전거길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길이다. 철로였던 길을 자전거길로 고쳐놓다 보니 경사나 좌우 굴곡이 다 완만한 편이고, 길 자체도 꽤 잘 포장돼 있고, 관리도 잘 되고 있다. 그렇다고 아라뱃길처럼 지루한 것도 아니다. 좌우로 한강과 숲길이 적당히 바뀌어 가면서 펼쳐진다.

여지껏 자전거길 종주 수첩이 없었다. 이번에 길을 떠나면서 중요한 목표 가운데 하나가 수첩을 사는 거였는데, 능내역 자전거 대여점을 찾아가서 수첩을 (큰아들 것까지) 두 권 사서는 내 수첩에 도장을 찍기 시작했다. 사실 아라뱃길이나 청주댐을 제외한 한강 구간, 그리고 남한강의 능내역까지는 몇 번 이미 달려본 구간이라 그 날 처음으로 가 본 데는 양평 군립미술관 인증센터 한 군데 뿐이긴 했지만, 그래도 도장을 찍고 나니 나름 소소한 성취감에 기분이 괜찮았다.

역풍을 헤치고 겨우겨우 양평 군립미술관 인증센터를 찍고는 돌아오다가 중간에 뒷바퀴에 펑크가 난 걸 발견했다. 다행히 길가에 자전거를 걸어둘 만한 스탠드와 벤치가 있는 곳이 있어서 자전거를 걸고는 뒷바퀴 튜브를 교체했다. 타이어 안 쪽을 살펴보니 알루미늄 쪼가리 같은 게 들어있었다. 대체 그게 어디서 들어갔는지 모르겠다. 바퀴 테의 튜브 바람 넣는 구멍 근처에서 떨어진 게 타이어 안에 들어가 있었던 건지...

한참을 튜브 간다고 씨름하고 나서 기운이 더 빠져서 꾸역꾸역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에 국도변에 있는 옥천 냉면에 들러서 물냉면 하나에 냉면 사리 하나를 추가해 달라고 했더니 여기는 기본 양이 많아서 사리 추가는 하지 않는다고 한다. 냉면을 받아 보니 그럴 만도 한 것 같았다. 물론 워낙 배가 많이 고팠어서 싹싹 다 먹고도 1-2시간 후에는 배가 고파졌지만... 사실 큰 길가에 있는 가게 말고 정말 맛있는 데가 있다고 하는데 다음에 가족이나 다른 일행과 같이 간다면 거길 찾아가서 완자도 같이 먹어야겠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부근부터 사람이 정말 많아졌다. 날씨도 좋고 기온도 올라가고 하니 나들이 나온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일단 상황이 이렇게 되면 시속 20 km도 힘들다. 지그재그로 타는 사람들, 두 명이 정답게 나란히 길 막고 달리는 사람들 때문에 무리해서 속도를 내려고 했다가는 사고만 나기 십상이다. 게다가 점심 시간 무렵부터 바람 방향도 바뀌어서 돌아가는 길은 순풍이겠거니 했던 기대도 산산히 부서졌다.

종주수첩을 산 김에 광나루, 뚝섬까지 전부 도장을 찍고 싶었다. 근데 광나루 인증센터에서 도장을 찍고 출발하는데 또 뒷바퀴 바람이 빠져 있었다. 광나루 공원에서 자전거를 뒤집어놓고 튜브를 살펴보니 이번에는 튜브를 갈면서 끼어들어간 듯한 바퀴 테의 장식용 페이트 조각 같은 게 튜브에 구멍을 낸 것 같았다. 기껏 새 튜브 끼우고 그 날 바로 펑크가 나니 가슴이 아팠지만 여분 튜브도 더 이상 없고 해서 그냥 패치로 때우고 다시 열심히 바람을 넣었다. 하루에 펑크 두 번은 처음이었다. 결국 두 번째 펑크를 경험하고는 힘들어서 강 건너 뚝섬 인증센터에 갈 마음이 안 났다. 한강 자전거길은 오는 내내 교통 체증 상태. 그냥 정신줄 놓고 겨우겨우 동작역까지 갔다.

집에 돌아와서 보니 뒷바퀴 바람이 또 빠져 있다. 대체 이건 뭔가 했는데, 튜브를 물에 담가 확인해 보니 패치 한 쪽 구석으로 공기방울이 새나온다. 아마 패치를 잘 못 한 모양이다. 패치 있는 근처에 패치를 한 번 더 덧붙였다.

결국 이 날 펑크 때문에 고생을 하고는 바로 CO2 주입기하고 CO2 캔, 그리고 여분의 튜브까지 넉넉하게 샀다. 다음에는 펑크가 나도 조그만 휴대용 펌프로 바람 넣느라 체력을 소모하진 않기를...

중간에 돌아갈까 말까 고민을 여러 번 했지만 이왕 나선 거 집에 좀 늦게 가도 목표로 했던 거리는 다 채우자는 생각으로 꾸역꾸역 페달을 돌렸는데, 그래도 나름은 최장거리 기록을 해서 기쁘다. 이제 점점 몸이 적응되고 나면 더 먼 거리를 더 짧은 시간 안에 주파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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