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쓰고 있는 노트북은 Thinkpad X20이다.
절친한 친구 상훈이한테서 구입해서 열 달 정도 사용한 대우 솔로 노트북에 이어서 대학원 2학년 올라가면서 구입한 두 번째 노트북인데, 이건 새 걸로 산 놈인데다가 벌써 2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함께 했기 때문에 그런지 정말 정이 많이 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시꺼멓고 각진 IBM Thinkpad가 디자인이 안 좋다고 하지만, 난 정말 IBM 디자인을 좋아한다. 의외로 나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 놀라울 때도 있지만, 어쨌든 Thinkpad의 까만색에 딱딱해 보이는 디자인은 믿음직하고 멋지다.

그런데, 이 X20의 뽀대를 급격히 감소시키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키보드였다.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사실이지만, 키보드에 있어서 Thinkpad를 능가할 노트북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키를 누르는 감촉은 정말 압권이고, Insert, Delete, Home, End, PgUp, PgDn 키의 배치와 화살표키의 배치 등에 있어서 다른 어떤 노트북에서도 따라올 수 없을만큼 편리하다.
근데, 내가 사용하고 있는 이 놈은 키보드를 구성하는 플라스틱의 재질이 유난히 무른지, 아니면 내가 워낙 키보드를 많이 써서 그런지 키보드가 많이 닳아서 키들이 번쩍번쩍거릴 정도가 되었다. 산지 1주일만에 스페이스바가 맨질맨질해지기 시작하더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쓰다보니 어느덧 거의 모든 키가 광을 내기라도 한 것처럼 반들반들하게 되었다. F와 J 키에 볼록 튀어나온 부분도 거의 닳고..

그런데 이 노트북을 살 때 받은 30만원어치 A/S를 받을 수 있는 쿠폰의 유효기간이 3월 31일까지였기에 이걸 어떻게 써먹을까를 고민하다가 결국 키보드를 갈았다. 원래 키보드 가는 게 AS 비용까지 하면 10만원이 약간 넘는데, 이거랑 다른 거 가는 거랑 해서 한 20몇만원어치를 서비스받았다. 30만원 꽉 채우는 것도 생각해봤지만, 다른 건 별로 문제되는 것도 없고 해서(많은 사람들이 상판 교체를 권했지만 별로 더럽지도 않고 교체해서 괜히 한 귀퉁이가 잘 안 맞는다던가 하는 귀찮은 상황이 오는 걸 원하지도 않았고, 어차피 안 쓰면 버리게 될 쿠폰 30만원 짜리 20몇만원만 쓴다고 해서 뭐 그리 아까울 것 같지도 않고, 20몇 만원이라는 금액의 혜택을 받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기 때문에...) 그냥 필요한 것 두 가지만 교체를 받았다...

키보드를 갈고 나니 이놈이 새것처럼 됐다. 기사님이 액정도 깨끗하게 닦아주시고 여기저기 먼지도 털고 상판도 좀 닦아주시고 해서 정말 깨끗하고 이쁘게 생긴 노트북으로 다시 회춘을 해버렸다.

그동안 이 노트북으로 네 다섯권의 책을 번역했으니 정말 키보드가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그동안 고생한 키보드를 받아오고도 싶었지만, 기사님이 다시 포장을 잘 해서 어디론가 보내야 하는 것 같길래 그냥 두고 왔다. 그것도 정이 들어서 그런지 조금은 섭섭하더라...

어쨌든 새것처럼 된 이 놈을 보고 있으니 기분이 상쾌하다. 아주 오랜만에 세차해서 반짝거리는 차를 바라보는 것보다 두 배쯤 더 기분이 좋다고나 할까?

내 계획대로 된다면 앞으도로 3년 정도는 더 써야 할텐데, 그 전까지 부디 별 탈 없이 잘 쓸 수 있기를...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