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5월쯤에 열리는 자전거 대회 중에 화천 DMZ랠리 전국 평화자전거대회라는 대회가 있다. 화천 DMZ랠리라고들 많이 부르는데, 아마추어 자전거 동호인들이 즐겁게 참가할 수 있는 대표적인 대회라고 한다. 대회에 나갔던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다들 평이 좋다. 거리도 70여 km 정도라 짧고, 업힐이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탈 만한 모양이다. DMZ 구간을 상당히 많이 달리고, 민/관/군이 합동으로 후원하는 대회라 교통 통제도 잘 되는 편인 것 같다. 다른 그란 폰도들 처럼 힘들지도 않고, MCT 선수급의 동호인들보다는 그냥 좀 편하게 놀러 오는 동호인들이 많은 대회 같은 느낌이랄까...


어제저녁쯤에 자전거 동호회에서 화천 DMZ 접수 얘기가 나오길래 잠시 찾아보다가 페북에 갈까? 하고 운을 띄우니 재방이도 힘을 더해준다. 종혁이 형도 같이 뛰시겠다고 하시고... (내가 기상령도 무사히 넘고 끌바 안 하고 완주할 수 있을지 걱정되어) 잠시 고민이 들기도 했으나, 지난번처럼 감상실 선후배 세 명이 재미있게 타고 오면 되겠구나 생각하며 그냥 일단 신청해 보기로 했다.


오전 10시에 알람을 맞춰놓았다가, 10시 되자마자 컴퓨터로 접속을 했는데, 신청까지는 잘 되는데 카드 결제로 잘 넘어가질 않는다. 부하가 많이 걸려서 그런가 하고 좀 기다리고 있는데, 재방이는 핸드폰에서 무사히 신청을 마쳤다고 한다. 부랴부랴 핸드폰으로 다시 들어갔더니 카드 결제가 간단하게 끝난다. 대충 10시 10분쯤에 접수와 결제를 마친 것 같고, 특별히 시스템이 버벅거린다든가 접속이 잘 안 된다든가 하는 문제는 없었어서, 그리고 인터페이스도 간단하고 깔끔해서 마음에 들었다.




근데, 의외로 접수는 금방 마감된 모양이다. 종혁이 형님은 미팅이 있어서 10시 20분쯤 접속했더니 이미 접수가 완료돼서 접수를 못 하셨다고 한다. 안타깝다. ㅠㅠ


대회는 5월 20일, 일요일에 열린다. 8시까지는 집합장소에 가야 하고, 화천이 집에서 은근히 멀기 때문에 5시쯤에는 일어나서 출발해야 할 것 같다. 9시 출발이고, 느긋하게 컷오프 시간 안에 오는 걸 목표로 하면 오후 1시쯤에는 도착할 거다. 정리하고 밥 먹고 집에 오면 해질 무렵쯤에 도착할 수 있겠네.


올해 랜도너스 접수를 하나도 못 했는데, 마침 오늘이 일부 날짜의 랜도너스 접수 시작일이라 찾아가 보니 천안 랜도너스는 5, 6월 빈자리가 좀 있다. 5월 20일 하고 너무 가까운 시기에 랜도너스까지 뛰면 아내한테 너무 미안할 것 같아서 어쩔까 고민을 하다가 6월 9일 천안(서) 200 km를 일단 신청해 봤다. 4월 중하순쯤에 200 km 한 번 뛰면 딱 좋겠는데, 갈 만한 유일한 게 4월 21일 천안(서) 200 km 경기다. 그 시기의 브레베는 다들 300, 400, 600 대회라서 내가 낄 수가 없다. 가끔씩 들어가서 빈자리가 생기는지 노려봐야지.


미세먼지가 너무 많아 터보트레이너로 운동을 좀 하겠다고 자전거를 거실에 옮겨놨다. 막내가 자전거 만지다가 다치거나 할까봐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가끔씩 바퀴를 손으로 돌려서 손이 좀 더러워지는 거 빼면 큰 문제는 안 생기고 있다. 근데 자전거를 빨래 건조대 대용으로 쓰면서 빨래가 체인에 닿아 시커먼 기름이 묻는 일이 몇 번 있고 나니 이왕 이렇게 된 거 체인 청소나 하자는 생각이 들어 어제 자전거 체인 청소에 도전했다. 2014년 여름 자전거를 산 이후로 체인을 풀어서 청소한 적이 한 번도 없고, 특별히 험한 데서 타진 않았지만 체인이랑 체인링, 스프라켓을 꼼꼼히 관리하지 않으면서 습식 체인 오일을 많이 썼더니 오일과 이물질이 섞여 엄청나게 찐득하고 새까맣게 된 구두약에 흙 비벼놓은 것 같아 보이는 오염물이 체인 전체를 덮고 있었다.


손이 기름으로 뒤덮여 너무 더러워서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지 못했다. 사진 없이 글로만 남기려니 많이 아쉽다. 다음에는 아들 불러서라도 사진 찍어서 남기리...


준비물:

체인을 세정액에 담가둘 적당한 플라스틱통 - 두부 두 모 들어가는 두부 포장 플라스틱통 사용.

버릴 칫솔

플라이어 - 체인링크 풀 때 사용

체인 잡는 고리 - 체인 링크를 풀거나 체결할 때 양쪽을 잡아서 당겨줘야 한다. 손이 모자라니까 고리로 잡아줘야 하는데, 파는 것도 있지만 그냥 철사 옷걸이 하나 끊어서 구부려서 만들었다. (참고: http://blog.naver.com/jun18th/220739302056)

오렌지 세정제 - 누군가가 비교기를 올렸는데 석유 같은 것보다 오렌지 세정제가 효과가 더 좋다고 해서 오렌지 세정제 사용. 등유 사러 주유소 가기도, 세정 끝난 등유 버리러 다시 어디 가기도 귀찮았다.


첫 단계는 체인 링크 풀기. 인터넷에서 대충 찾아보니 체인링크를 잡아 누르면 구멍이 큰 안쪽으로 밀려가면서 쓱 빠지는 것 같아서 대충 세게 누르면 되겠거니 했는데, 영 안 된다. 손에 찐득한 기름 잔뜩 묻히고 한참을 고생하며 전용도구를 사야 하나 고민하다가, 손 씻고 핸드폰을 검색핬다. http://www.coolwarp.net/1074 이 글을 보니 두 체인 링크를 플라이어의 서로 반대편 날에 걸고 눌러주면 허무하게 툭 빠진다길래 해 보니 호... 정말 그렇다. 역시 기술을 배워야 해.


체인을 잘 풀어서 플라스틱 통에 넣고는 오렌지 세정제를 팍팍팍팍 뿌려서 체인을 담그고 칫솔로 문지르고 통을 흔들어 찌든 때를 녹여내는 작업을 여러 번 반복했다. 세 번째 정도 뿌린 후에는 그대로 담가놓고 크랭크 체인링과 스프라켓, 앞 뒤 드레일러와 풀리 등을 물티슈로 청소했다. 체인을 뺀 상태로 하니까 훨씬 수월했다. 풀리 둘 중 하나는 손가락으로 돌리면 한참동안 잘 도는데 다른 하나는 돌릴 때 큰 저항감은 없지만 휙 돌리면 금방 멈춘다. 나중에 체인청소할 때 한 번 분해해서 속에 있는 베어링을 점검해볼 필요도 있을 것 같다. 다시 찾아보니 둘 중 위쪽에 있는 건 가이드 풀리, 아래쪽에 있는 건 텐션 풀리라고 하는데 가이드 풀리는 체인 위치를 잡아주는 역할을 하며 원래 아주 잘 돌아가야 하는 건 아니라고 한다. 물론 고급 제품에서는 둘 다 실드 베어링을 써서 잘 돌아가겠지만, 텐션 풀리만 잘 돌아가면 큰 문제는 없는 모양이다. 괜히 쓸 데 없는 데 신경 쓸 뻔했구나. 아, 애초에 이런 데 신경을 썼던 것 자체가 좀 쓸 데가 없는 건가? 


스프라켓을 속시원하게 씻어내지 못해서 아쉽긴 하지만 베란다에서 자전거 세차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이만하면 만족한다. 제대로 하려면 물 살살 뿌려가면서 세정제로 팍팍 씻어낼 수 있는 마당이 있는 집이 필요할 것 같다. 스프라켓 청소를 하다가 예전부터 빼고 싶었던 스프라켓 안쪽 플라스틱 보호대를 없앤다고 또 쇼를 했다. 나도 예전에는 이 플라스틱이 꼭 필요한 부품인 줄 알았는데, 없어도 되는 거라고 해서 없앨까 생각도 했지만 귀찮아서 안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몇 군데 부러뜨리면 쉽게 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해 보니 그게 아니었다. 또 찾아보니 그거 하다가 스프라켓이나 스포크 상하느니 그냥 두는 게 낫다는 얘기도 보였다. 이미 일부분을 지저분하게 부러뜨려놓은 후라 이대로 둘까 잠시 고민을 하다가 오기를 내서 다시 시작. 일자 드라이버로 스프라켓과 스포크 안 상하게 잘 힘을 가해서 몇 군데 부러뜨려서 겨우 다 제거했다. 제거하고 나니 자전거가 좀 더 고급져 보인다. 


오렌지 세정제에 담가놨던 체인은 물에 여러 번 깨끗하게 헹궈내고, 몇 번 털어서 물기를 빼고 키친타올로 꾹꾹 눌러 다시 한 번 물기를 제거했다. 다시 체인링크 채우고 건식 테플론 오일을 발라주고 크랭크 한참 돌리면서 기어 바꾸고 하면서 상태를 체크하고 오일을 골고루 묻혔다. 키친타올로 남은 오일을 닦아냈는데, 스프라켓에 남아있던 기름때가 다시 좀 녹아서 체인에 묻기 시작한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다음에는 스프라켓 공구를 사다가 스프라켓을 분해해서 청소해볼지, 아니면 그냥 뒷바퀴만 빼서 욕조 가서 오렌지 세정제 뿌리고 샤워기로 물 살살 뿌려서 청소를 해 볼지 생각 중이다. 스프라켓 분리 자주 하는 것도 아닌데 몇 만원 주고 공구 사기가 부담스러우니까.


그리고 다음에는 꼭 면장갑이라도 끼고 작업해야겠다. 더러운 오일 손에 잔뜩 묻었는데 오렌지 세정제로도 쉽게 지워지지 않아 아직 손 끝이 시커멓다. 손톱 밑에도 새까맣게 때가 껴 있어서 땅거지가 된 느낌이다. 독한 오렌지 세성제를 맨손에 잔뜩 뿌려대서 피부가 상한 것 같아 보습제를 열심히 바르고 잤는데도 아침에 일어나 보니 손이 거칠거칠한 느낌이다.


처음으로 체인을 분리해서 청소하다 보니 거의 2-3시간은 걸린 것 같다. 웬만하면 청소 안 하고 다시 2-3년 타면 좋겠지만, 다시 청소를 하게 되는 날이 오더라도 다음 번에는 훨씬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청소할 수 있을 것 같다. (익숙해지면 1시간이면 충분할 것 같다) 로드보다 훨씬 더러운, 옛날에 산 철티비도 체인을 청소해야 하는데, 큰애가 그 철티비를 자주 타게 될 것 같으니 조만간 체인 청소에 재도전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자전거 타고 하루에 제일 긴 거리를 움직인 건 지난 주, 3월 8일에 탔던 하트코스 확장판이었다. 100 킬로미터를 살짝 넘기는 거리에 불과했다. 15일에는 주행거리를 늘리면서도 조금 다른 코스를 타 보고 싶었다. 일단 주행거리를 늘리려면 속도 내기 좋은 길로 가야 하는데, 우리 집에서는 일단 제법 잘 뚫린 자전거길을 가려면 안타깝게도 어느 정도는 전철을 타고 나가야 한다.

지하철로 점프를 할 때는 보통 집 앞 역에서 전철을 타고 금정역이나 석수역으로 가서 가까운 안양천변 길에서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다. 과천 쪽에서 전철에서 내려서 양재천을 따라 자전거를 탈 수도 있는데, 이건 썩 마음에 들진 않았어서 앞으로 웬만하면 하진 않을 것 같다.

이번에는 처음부터 한강 자전거길에서 시작해보기로 했다. 4호선 동작역에서 내리면 전철을 갈아탈 필요도 없고 지하철역 출구에서 바로 한강으로 연결되니 좋을 것 같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7시쯤 동작역에 도착해서 자전거를 타고 한강 자전거길과 남한강 자전거길을 따라 양평역까지 갔다가 돌아오면 대략 120 km 정도 되는 것 같아서 이 코스에 도전하기로 했다. (근데 실제로는 아침에 좀 늦게 일어나서 동작역에 도착하니 이미 8시가 좀 넘었다. 이후로도 여러 이유로 속도를 잘 못 내서 계획보다 훨씬 늦게 집에 돌아왔다.) 코스 지도는 이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네이버맵 지도오늘 달린 왕복 코스. 한강 및 남한강 자전거길로만 달리는 코스로, 동작역에서 출발해서 양평 군립 미술관 인증센터까지 갔다가 동작역으로 되돌아오는 120 km를 살짝 넘는 코스다.


동작역에서 내려서 1번 출구로 나서면 바로 반포천 자전거길이 나오고, 북쪽으로 100 미터만 더 가면 한강 자전거길이 나온다. 한강 자전거길에서 동쪽으로 하염없이 갔다. 그 날 한강변에서는 서울오픈 마라톤이라는 대회가 있어서 그런지 달리기 하는 분들이 많이 있었다.

겨우내 운동을 게을리 해서 몸이 영풀리질 않은 데다가 양평까지 가는 동안 거의 쉬지 않고 바람이 계속 동풍(역풍)이어서 도무지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 전에는 암사고개를 넘어갈 때도 그냥 언덕이 좀 힘들구나 했는데, 이번에는 중간에 몇 번을 내려서 걸어가야 하나 고민을 해야 했을 정도로 몸이 엉망이었다. 컨디션 괜찮을 때는 강변 자전거길처럼 평평한 데서 탈 때는 50 km 넘게 달릴 때까지 한 번도 안 쉬어도 괜찮았던 것 같은데, 영 상태가 안 좋아서 미사대교 밑에서 헐떡거리면 한 번 쉬어야 했다. 터보 트레이너를 열심히 탈 걸 사 놓기만 하고 타지 않았던 게 진심으로 후회됐다. 이 상태로 갔다가 혹시 팔당대교 건널 때 자전거를 끌고 건너야 하는 건 아닐까 살짝 고민이 되기도 했지만, 그 정도는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3월 중순인데도 아침에는 날씨가 추운 것도 꽤 고통스러웠다. 로드용 클릿 신발은 겉보기에는 아주 딱딱한 플라스틱 같은 모양으로 당연히 방수가 될 것 같은 모양이지만 실제로는 겨울용이 아닌 이상 방수는 커녕 바람이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구조다. 아직 공기가 찬 상태에서 이 신발을 신고 자전거를 타면 발가락이 얼어서 마비되는 느낌이 든다. 미사대교 밑에서 쉬는 동안에도 발이 시려워서 신을 벗고 한참 손으로 발끝을 녹여야 했다.

팔당대교를 건너 옛 중앙선 철로를 따라가는 자전거길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길이다. 철로였던 길을 자전거길로 고쳐놓다 보니 경사나 좌우 굴곡이 다 완만한 편이고, 길 자체도 꽤 잘 포장돼 있고, 관리도 잘 되고 있다. 그렇다고 아라뱃길처럼 지루한 것도 아니다. 좌우로 한강과 숲길이 적당히 바뀌어 가면서 펼쳐진다.

여지껏 자전거길 종주 수첩이 없었다. 이번에 길을 떠나면서 중요한 목표 가운데 하나가 수첩을 사는 거였는데, 능내역 자전거 대여점을 찾아가서 수첩을 (큰아들 것까지) 두 권 사서는 내 수첩에 도장을 찍기 시작했다. 사실 아라뱃길이나 청주댐을 제외한 한강 구간, 그리고 남한강의 능내역까지는 몇 번 이미 달려본 구간이라 그 날 처음으로 가 본 데는 양평 군립미술관 인증센터 한 군데 뿐이긴 했지만, 그래도 도장을 찍고 나니 나름 소소한 성취감에 기분이 괜찮았다.

역풍을 헤치고 겨우겨우 양평 군립미술관 인증센터를 찍고는 돌아오다가 중간에 뒷바퀴에 펑크가 난 걸 발견했다. 다행히 길가에 자전거를 걸어둘 만한 스탠드와 벤치가 있는 곳이 있어서 자전거를 걸고는 뒷바퀴 튜브를 교체했다. 타이어 안 쪽을 살펴보니 알루미늄 쪼가리 같은 게 들어있었다. 대체 그게 어디서 들어갔는지 모르겠다. 바퀴 테의 튜브 바람 넣는 구멍 근처에서 떨어진 게 타이어 안에 들어가 있었던 건지...

한참을 튜브 간다고 씨름하고 나서 기운이 더 빠져서 꾸역꾸역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에 국도변에 있는 옥천 냉면에 들러서 물냉면 하나에 냉면 사리 하나를 추가해 달라고 했더니 여기는 기본 양이 많아서 사리 추가는 하지 않는다고 한다. 냉면을 받아 보니 그럴 만도 한 것 같았다. 물론 워낙 배가 많이 고팠어서 싹싹 다 먹고도 1-2시간 후에는 배가 고파졌지만... 사실 큰 길가에 있는 가게 말고 정말 맛있는 데가 있다고 하는데 다음에 가족이나 다른 일행과 같이 간다면 거길 찾아가서 완자도 같이 먹어야겠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부근부터 사람이 정말 많아졌다. 날씨도 좋고 기온도 올라가고 하니 나들이 나온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일단 상황이 이렇게 되면 시속 20 km도 힘들다. 지그재그로 타는 사람들, 두 명이 정답게 나란히 길 막고 달리는 사람들 때문에 무리해서 속도를 내려고 했다가는 사고만 나기 십상이다. 게다가 점심 시간 무렵부터 바람 방향도 바뀌어서 돌아가는 길은 순풍이겠거니 했던 기대도 산산히 부서졌다.

종주수첩을 산 김에 광나루, 뚝섬까지 전부 도장을 찍고 싶었다. 근데 광나루 인증센터에서 도장을 찍고 출발하는데 또 뒷바퀴 바람이 빠져 있었다. 광나루 공원에서 자전거를 뒤집어놓고 튜브를 살펴보니 이번에는 튜브를 갈면서 끼어들어간 듯한 바퀴 테의 장식용 페이트 조각 같은 게 튜브에 구멍을 낸 것 같았다. 기껏 새 튜브 끼우고 그 날 바로 펑크가 나니 가슴이 아팠지만 여분 튜브도 더 이상 없고 해서 그냥 패치로 때우고 다시 열심히 바람을 넣었다. 하루에 펑크 두 번은 처음이었다. 결국 두 번째 펑크를 경험하고는 힘들어서 강 건너 뚝섬 인증센터에 갈 마음이 안 났다. 한강 자전거길은 오는 내내 교통 체증 상태. 그냥 정신줄 놓고 겨우겨우 동작역까지 갔다.

집에 돌아와서 보니 뒷바퀴 바람이 또 빠져 있다. 대체 이건 뭔가 했는데, 튜브를 물에 담가 확인해 보니 패치 한 쪽 구석으로 공기방울이 새나온다. 아마 패치를 잘 못 한 모양이다. 패치 있는 근처에 패치를 한 번 더 덧붙였다.

결국 이 날 펑크 때문에 고생을 하고는 바로 CO2 주입기하고 CO2 캔, 그리고 여분의 튜브까지 넉넉하게 샀다. 다음에는 펑크가 나도 조그만 휴대용 펌프로 바람 넣느라 체력을 소모하진 않기를...

중간에 돌아갈까 말까 고민을 여러 번 했지만 이왕 나선 거 집에 좀 늦게 가도 목표로 했던 거리는 다 채우자는 생각으로 꾸역꾸역 페달을 돌렸는데, 그래도 나름은 최장거리 기록을 해서 기쁘다. 이제 점점 몸이 적응되고 나면 더 먼 거리를 더 짧은 시간 안에 주파할 수 있기를...




3월 8일에는 금정역 출발, 하오고개-탄천-한강-안양천, 금정역 도착 코스를 시도해 봤습니다.

저전거를 타면서 가장 고민 되는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어느 코스를 탈 것인가 하는 것 같습니다. 뭐 먹을지 고민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아요. 맛있는 것도 맨날 먹으면 질리는 법이고, 매일 밥 김치만 먹다가도 가끔 근사한 외식도 하면 좋고 말이죠. 주중에는 멀리 가기 힘들어서 한 시간 정도 동네에 있는 반월호수 뺑뺑이를 돕니다. (물론 이 정도 되는 코스 가까이 살고 있다는 것도 매우 행복한 일입니다. 밤에 10시 넘어가면 차도 별로 없고 신호등도 별로 없어서 혼자서 여기 뺑뺑이 돌러 멀리서 오시는 분들도 있으니까요.) 주말에 짬을 좀 내야 2-5시간 정도 되는 장거리 주행을 해 볼 수 있는데, 재미 없고 지루한 코스를 도는 것보다는 흥겹게 돌 수 있는 코스로 움직이는 게 좋을 겁니다. 집 근처에서 장거리를 탈 만한 곳은 없어서 장거리를 탈 때는 보통 전철을 타고 점프합니다. 안 그러면 좋지도 않은 인도/자전거 겸용 길로 한참을 가야 겨우 안양천에 들어가니까요.

보통 석수역에서 안양천을 타서 안양천/한강 합수부 쪽으로 자전거를 타고 나갑니다. 거기서 서쪽으로 가면 한강-아라 자전거길을 탈 수 있고, 동쪽으로 가면 한강 자전거길로 쭉 움직일 수 있지요. 안양천 길이 석수역에서 남쪽으로 가면 좀 안 좋아집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잘 닦인 석수역 북쪽으로 움직이는 거죠.

새 시즌을 시작하면서 적당한 업힐이 섞인 장거리 코스를 시도해 보기로 했습니다. 작년부터 이미 점찍어둔, 하트 코스를 확대한 코스로 100 km 정도를 타 보기로 했죠.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길이라 좀 걱정이 됐는데, 마침 2013년 바이시클뉴스에 실린 기사에 사진도 있어서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번에 뛴 코스는 https://www.runtastic.com/en/routes/geumjeong-big-heart 에 저장해 놓았습니다. (판교에서 탄천으로 넘어가는 부분 지도를 확대하면 길 못 찾아서 헤매는 부분도 나옵니다 ㅎㅎㅎ)

아침 챙겨 먹기가 귀찮아서 우유 한 잔에 단백질 가루 타서 아침 대신 먹고 집을 나섰습니다. 전철을 타고 금정역에서 내려서 1번 출구로 나와서 안양천 쪽으로 갔습니다. 1번출구 계단에서 쭉 이어지는 방향으로 가서 첫 번째 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엘에스로를 따라간 다음 바로 우회전하여 호계교를 건너면 오른쪽에 안양천으로 내려가는 경사로가 나옵니다. (이 경사로를 그냥 자전거 타고 내려가려다가 중심 제대로 못 잡고 클릿 제 때 못 빼서 어이 없게 낙차했습니다. 무릎이 좀 까진 것 빼면 저나 자전거나 별로 다친 덴 없었는데도 시작하자마자 기운이 쏙 빠지고 의욕이 줄어들더군요.)

호계교에서 한강 쪽으로 2.8 km 정도 가다 보면 안양천과 학의천이 만나는 쌍개울이 나타납니다. 쌍개울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학의천 쪽으로 빠졌습니다. 학의천변 자전거길을 따라 청계교까지 간 다음, 백운로로 접어들어 자전거를 타고 백운호수를 반시계 방향으로 돌았습니다. 백운호수 순환도로의 높은 점을 지나 내리막길을 끝까지 내려가면 “하루”라는 카페가 있는 삼거리가 나오고, 거기에서 우회전하면 학현로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학현로를 따라 계속 올라가면 꼭대기에서 학현터널을 지납니다. 터널을 지나 가파른 경사길로 신나게 내려가다 보면 서울외곽순환도로 아래에 우회전해서 들어갈 수 있는 경사로 위로 길이 있습니다. 택배회사 물류창고 같은 걸 지나서 쭉 가면 안양판교로로 이어집니다. 

하오고개는 곧게 뻗어있고 낮은 고개를 넘어가는 새 길(57번 국도. 새로 만들어진 안양판교로)과 청계공동묘지 옆으로 꽤 높은 고개를 넘는 구불구불한 옛 길(하오개로)이 있습니다. 경사도, 고도 등을 보면 새길이 훨씬 수월해 보이는데, 저는 차가 좀 쌩쌩 달리는 차도는 겁이 나서 잘 못 가겠더군요. 그래서 옛 길로 가기로 했습니다. 학현로에서 안양판교로 처음 들어설 때 가능하면 처음에는 인도 옆에 있는 자전거길로 가도 되는데, 하우현성당, 원터마을 표지판이 있는 지점을 지나가면서는 찻길로 가야 합니다. 그냥 인도 겸용도로 쪽으로 올라갔다가 버스정류장부터 길이 없어져서 많이 당황했습니다. 원터마을 표지판(큰 석조물) 지나서 바로 차도로 움직이는 것 잊지 마세요. 아직 클릿에 익숙치 않아서 오르막길에서는 클릿 잘 못 끼우는데, 인도에서 차도로 내려설 때 자전거에서 내려야 했고, 오르막길이 계속돼서 클릿을 끼우지 못하고 한참을 자전거 끌고 올라가야 했습니다. 금정역에서 이미 한 번 자빠진 후라 자신감이 훅 떨어져서 위험한 데서 클릿 끼워볼 엄두가 안 나더군요.

수백 미터 정도 되는 짧은 거린데 그거 끌고 올라가고 나니 기력이 급 소진됐습니다. 원터마을 표지판 지나 조금만 더 가면 구 하오고개 입구가 나옵니다. 안양시립 청계 공동묘지, 도깨비 도로 방향으로 빠지면 됩니다. 여기서부터 이제 하오고개가 시작됩니다. 근데... 거의 절반도 못 올라가서 끌바를 시작하고 말았습니다. 겨울을 지나면서 근력은 약해졌지, 체중은 늘었지, 아침은 제대로 안 먹어서 집에서 나올 때부터 배고픈 느낌이었지, 초반에 어이 없이 자빠져서 기운은 쏙 빠졌지, 처음 가는 길이라 내가 지금 얼마쯤 움직였는지 전혀 감이 없지, 안 좋은 조건이 여럿 겹치다 보니 이런 일이 일어나고 마는군요.

대체 누가 이 길의 난이도를 “하”급이라고 하나요... ㅠㅠ 아마 저는 초보자 단계에도 못 오른 모양입니다. ㅠㅠ (나중에 생각해보니 아마도 분당 쪽에서 안양쪽으로 넘어오는 걸 기준으로 하자면 하급으로 분류할 만도 할 것 같네요. 평균 경사로 기준 분당->안양은 4.7%, 안양->분당은 8%라고 나와있네요. 엔하위키의 업힐/서울-경기 부분 참조)

정상에 올라가니 롱보드 다운힐을 하는 분들이 모여서 보드를 타시더군요. 저는 자전거로도 무서워서 천천히 내려가는 길을 쌩쌩 잘 내려가시더만요. 하오고개 정상부터 한참 내리막길을 내려가면 한국학중앙연구소가 나옵니다.

그 후로 분당구청, 판교IC 방향으로 계속 이동합니다. 저는 바이시클 뉴스 기사에 나와있는대로 산운마을 아파트 401동 옆에서 운중천변 자전거길로 빠졌는데요, 그 길이 아주 좋진 않았습니다. 길 중 상당 부분은 보행자 전용으로 용도가 바뀌어서 자전거 타고 지나가기도 좀 그렇고 탄천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지도 않습니다. 그냥 운중로 또는 그 옆의 보행자/자전거 겸용 길로 움직여도 충분히 좋을 것 같았습니다.

운중로 끝의 마지막 버스 정류장을 지나면 탄천으로 이어지는 하천변 자전거길로 내려갈 수 있습니다. 거기로 내려가면 탄천 자전거길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탄천 자전거길도 꽤 잘 돼 있더군요. 한참을 달려 한강에 도착했습니다. 탄천 합수부에서 하류가 아닌 상류 쪽으로 틀었습니다. (100 km를 맞추기 위해서입니다. 탄천 합수부에서 바로 하류쪽으로 빠지면 100 km가 좀 안 되더군요.) 올림픽 대교를 지나 천호대교 조금 못 미친 곳에 있는 광나루 운동장에서 자전거를 돌려서 다시 하류 방향으로 이동했습니다. 잠실철교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다리를 건너 강북 자전거길을 지나 양화대교를 건너 다시 남쪽으로 넘어왔습니다. 안양천 합수부에서 안양천으로 돌아와서는 다시 쌍개울을 지나 호계교에서 여정을 마쳤습니다. 

중간에 편의점에서 알루미늄 호일 그릇에 끓여먹는 라면하고 캔커피를 먹었습니다. 조금 살 것 같더군요. (그나저나 알루미늄 호일 라면 꽤 맛있더군요. 나중에 아들이랑 같이 한강 가면 한 번 맛을 보여줘야겠습니다.) 그런데 한 80 km 정도 타니 슬개골 바로 위쪽 허벅지 근육에 쥐가 나는 느낌이 들어 혼났습니다. 여러 모로 겨울 동안의 운동 부족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런타스틱 기준 104.77 km, 이동시간은 5시간 12분 55초, 휴식 시간 46분 49초, 평균속도 20.09 km/hr, 2219 kcal 소모. 아까도 얘기했듯이 거의 봉크된 느낌으로 계속 타서 그런지 영 속도도 안 나고, 생각보다 재미도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반월호수 뺑뺑이도 많이 돌아서 근력을 키우고 체중도 좀 줄인 다음에 좋은 컨디션으로 재도전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다음 장거리 뛸 때는 평지에서 빠르게 타는 걸 중심으로 해야겠습니다.

P.S. 다녀와서 애들 데리고 목욕탕에 다녀왔는데 시즌 시작하고 별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100 km를 탔는데도 목욕탕에서 물에 몸을 좀 담가서 그런지 근육통이 훨씬 덜하더군요... 아이들도 목욕탕에서 놀면 좋아하니 일석이조. 원래 목욕탕 싫어하지만 앞으로 종종 장거리 뛴 후에 애들이랑 목욕탕 가야겠어요.

P.P.S. 사진 없이 글로만 쓰려니 내용 전달도 그렇고 좀 아쉽네요. 다음에는 좀 귀찮아도 중간중간 사진을 찍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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