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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본문의 내용과 무관합니다.

군대 있을 적...

하루는 소방교육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우리 캠프 내에 있는 소방서에서 소방 담당자가 와서 우리 부대 사람들 대상으로 화재 대처법 등에 대한 교육을 하고, 소화기로 불도 꺼 보고 그런 훈련을 했습니다.

그 날 교육 담당자는 나이가 지긋하신 한국인 군무원이셨는데, 평택 캠프 험프리즈 소방서에서 수십 년은 족히 일해오신 분이신 듯 했습니다.

교육은 영어로 진행됐습니다. 전체 피교육생 중 40여명 정도는 미국인, 대여섯 명 정도가 한국인인 카투사였으니까 당연히 영어로 진행하죠. 선생님은 나이 지긋하신 한국인, 수강생은 대다수가 미국인, 극히 일부만 한국인.

그 날은 저에게 정말 충격적인 날이었습니다. 나름대로 영어 잘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고, 발음도 한국인 치고는 한국 액센트가 거의 없는 편이고, 당연히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능력도 발음이 미국 표준 발음에 가깝지 않은 사람들보다 나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발음이 좋아야 영어를 잘 하는 거라는 생각도 조금은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완전히(!) 틀렸습니다.

그 나이 지긋하신 분께서는 거의 한글로 적어놓은 것 읽는 듯한 발음을 하시는데도 영어가 유창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여유있게 농담도 주고 받으면서, 미군들이 어떤 액센트로 질문을 해도 다 알아듣고 유창하게 대답하고... 지금 생각해 보면 국내에서 활동하는 웬만한 유학파들보다 영어를 훨씬 더 유창하게 잘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오륀지, 티철, 쌩큐 얘기 들으면서 그 할아버지가 생각났습니다. 중요한 건 얼마나 미국 사람들하고 비슷한 소리를 내는지가 아닙니다.

Singlish, Inglish, Chinglish, Jinglish 해도 영어로 의사소통 잘 됩니다.

게다가 외래어와 외국어가 어떻게 다른지, 한글 표기법의 기준은 무엇인지도 모르는 분들을 보고 있노라면 영어 교육 강화를 부르짖는 그 분들에게, 그리고 온 국민이 영어 공부에 미쳐 돌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지금 정말 필요한 건 국어교육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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