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한테는 필기도구에 대한 페티시 같은 게 좀 있습니다. 뭐 그렇다고 고가의 필기도구를 사 모은다거나 그런 건 아닙니다만...

만년필도 좋아하는데, 제가 종이 위에 손으로 쓰는 일을 그리 많이 하진 않다 보니 잉크를 다 쓰기 전에 말라 붙는다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맨날 경건한 마음으로 잉크를 새로 채우거나 카트리지를 교환해 놓고는 한참 지난 후에 말라붙은 카트리지 버리고 물로 빨면서 가슴 아파하죠...

샤프도 좋아하는데, 제일 좋아하는 건 펜텔에서 나오는 샤프(우리나라에서는 제도샤프라는 이름으로 팔리는 것)와 파카 Jotter 샤프입니다. 파카 Jotter는 볼펜하고 샤프 모두 좋아하죠... 제도샤프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펜텔 샤프하고 똑같이 생긴 샤프는 제가 좀 꾹꾹 눌러 쓰는 편이어서 그런 건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쓰다 보면 꼭 샤프심이 적당한 길이만큼만 나오게 해 주는 고무로 된 조그만 부품이 도망가 버린다거나 하는 문제가 생겨서 안 좋아합니다.

얼마 전 웹 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지우개 달린 노란 연필이 잔뜩 꽂혀 있는 사진을 보고는 갑자기 필이 꽂혀서 오늘 학교에서 Staedtler 상표가 달린 지우개 달린 연필 한 자루하고 휴대용 연필깎이를 구입했습니다.

첨에 연필깎이도 3200원이나 하는 Staedtler 걸로 샀었는데, 확인해 보니 색연필용으로 나와서 짧게 깎이는 놈이더군요. 그래서 가서 그냥 1200원짜리 일제(아마도 중국산이겠죠)로 바꿔왔는데, 어렸을 적 경험했던 휴대용 수동식 연필깎이처럼 날이 안 좋아서 거칠게 깎이는 일은 별로 없는 것 같아 안심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영화 같은 데서 흔히 볼 수 있는 정말 미국적인 사무실 풍경(?) 가운데 하나로 뒤에 지우개 달린 연필로 레터나 리걸 사이즈 패드에 끼적끼적 글씨를 쓰는 모습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군대 시절 주로 사용했던 스킬크래프트 연필에 비하면 Staedtler 연필은 연필 자체도 그렇지만, 지우개 품질이 정말 훨씬 좋아 보입니다. 그 지우개는 정말 어렸을 적 쓰던 지우개 마냥 잘 지워지지는 않고 종이만 시커멓고 너덜너덜해지게 만들었거든요...

오늘도 이렇게 지름을 저지르고는 (총액: 1400원) 흡족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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