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아내랑 아이가 다 감기가 걸려서 병원을 좀 다녀왔습니다. 아내 진료비가 3000얼마, 아이 진료비가 2000 얼마 나오고, 약값이 또 4000 얼마 정도 나왔어요. 물론 본인부담금이 그렇다는 얘기죠.

저 정도의 본인부담금으로 병원 진료를 받고 약을 처방 받아서 약을 구입할 수 있는 건 다 의료보험 덕분이예요. 의료보험 혜택을 받기 위해서 우리는 매달 의료보험료를 내죠.

우리 집에는 근로자가 하나도 없어요. 저는 학교에서 한 달에 월급을 90만원을 받습니다. 실제로는 세금 떼고 나면 그보다 적은 금액을 받게 되죠. 물론 보너스는 없어요. 보너스만 없는 게 아니고, 소득 자체가 근로소득이 아니고 기타소득이기 때문에 직장의료보험에 가입할 수가 없기 때문에 지역의료보험에 가입을 해야 해요. 고용보험 같은 게 안 되는 건 당연한 일이겠죠. 게다가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세금공제 등에 있어서도 교육비, 의료비 공제 같은 게 안 됩니다. 병원비 영수증 모았다가 연말에 내면 소득공제 해 주는 그런 게 없어요.

(실은 월급 90만원 가지고 생활하는 건 아니예요. 그게 생활이 될 턱이 있나요. 아파트 관리비 내고 의료보험료 내면 벌써 반은 나가는데요... 지금 살아가고 있는 건 다 아내 덕분인데, 아내가 학교에서 조교하던 시절에 월급 차곡차곡 모아뒀던 걸로 겨우 버텨내고 있어요. 내가 빨리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 우린 정말 빚더미에 앉고 말지도 몰라요.)

지역의료보험, 가입해본 적이 있으신 분이 어느 정도 있으신지 모르겠는데, 상당히 이상한 요율체계를 갖추고 있어요. 다른 집은 어떤지 모르지만 저희 가족 같은 경우는 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아주 적어요. (아마도 소득이 워낙 적어서 그렇겠지만...) 주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살고 있는 집과 가지고 있는 자동차를 바탕으로 하는 재산 부분이죠. 앞에도 썼듯이 월급 90만원 가지고 세 식구가 살고 있는데, 소득이 저렇게 적은데도 불구하고 한 달에 나가는 의료보험료는 12만원 가까이 돼요. 우리가 이렇게 의료보험료를 많이 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집 전세금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동차(경차인데도!), 제가 작년에 신고한 소득 액수를 바탕으로 하면 저 정도의 보험료를 내야 하는 등급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직장의료보험은 체계가 완전히 달라요. 유리알 지갑이라는 봉급생활자들 답게 딱 기본급만 가지고 승부를 하죠. 재산이 많든 적든 부양가족이 많든 적든 좋은 차를 가지고 있든 차가 없든 상관이 없어요. 예를 들어 4억 정도 되는 집을 한 채 가지고 있고, 중형차를 가지고 있고, 매달 300만원 선의 월급을 받고 있는 A라는 가상의 친구를 보면 의료보험료를 저보다 적게 내요. 물론 직장의료보험에서는 사업장에서 의료보험료의 절반을 부담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직장의료보험의 경우에는 무조건 기본급에 의해 보험료가 결정되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부동산이 4억이든 4000억이든 의료보험료에는 차이가 없는 거죠.

뭐 조만간 직장의료보험과 지역의료보험이 합쳐진다고 하는데, 어쨌든간에 이렇게 저와 A라는 가상의 친구 사이에 본인이 내야 하는 의료보험료가 크게 다른 이유는 뭘까요?

정답은 결국은 소득의 투명성 때문이라고 밖에 나올 수 없어요. 직장의료보험의 경우 소득이 워낙 투명하기 때문에 월급만 가지고 보험료를 책정해도 대다수의 사람의 경우에 제법 공평하게 보험료를 걷게 돼요. 하지만 지역의료보험에서는 신고하는 소득 자체가 아주 불투명하기 때문에 그게 불가능하고, 재산내역이라든가 자동차 보유 현황 같은 걸 근거로 이상하게 보험료를 산정하다 보니 저 같은 사람은 소득의 10%도 넘는 금액을 의료보험료로 지불해야 하죠.

지금 대한민국의 대통령인 분은 의료보험료를 만 얼마 냈었다고 해요. 그 방법이 참 뛰어난데, 그 분 정도의 재산 수준이면 정상적으로 지역의료보험에 가입했을 때 원래 의료보험료가 100만원이 넘어가요. 그래서 어떻게 했냐면... 자기 명의의 빌딩을 바탕으로 빌딩 관리업체를 만들고, 거기에 자기를 직원으로 집어넣어서 아주 적은 월급을 받는 근로소득자로 변신시킨 거예요. 그러면 100만원 전후의 월급을 받는 근로소득자의 처지에 맞게 매달 의료보험료를 2만원 정도만 낼 수 있게 돼죠. 근로소득자는 재산이 많든 적든 피부양자가 많든 적든 기본급에 의해서만 의료보험료가 결정되니까요. (참고 기사 링크)

결국 지역의료보험에 가입해야 하는 사람들 중에 재산이 좀 되는 사람들은 저런 식으로 빠져나가요.

근데 그게 다가 아니예요. 재산이 아주 많아도 나이가 좀 돼서 자녀들이 근로소득이 생기기 시작하면 애들의 피부양자로 들어가 버리면 땡이예요. 의사, 변호사 같은 고소득 자영업자들도 이런 방법을 아주 많이 쓴다고들 해요. 자식 입장에서는 부모님을 피부양자로 등록한다고 해서 자기가 돈 더 들 일도 없으니깐 그렇게 해 주는 게 뭐 서로 좋고 당연한 일일 텐데, 재산이 많고 소득이 많은 사람들이 지역의료보험에 가입을 하지 않게 되니까 결국 저 같은 사람은 어이 없게 많은 의료보험료를 지불해야 하게 되죠.

이렇게 별 달리 기댈 데가 없고, 별로 소득이 없으면서 그 소득이 전부 소득 신고가 되는 저 같은 저소득자들은 상대적으로 의료보험료를 많이 내게 되요. 저는 그래도 대학원생 신분이라 정식 직장을 잡을 때까지만 참겠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은 어떻게든 편법을 찾아 가거나 소득을 적게 신고하거나 하게 되면서 악순환은 심화되죠.

과연 이런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제 생각에는 일단 소득을 투명하게 추적할 수 있어야 하고, 그 다음으로는 누구든, 어느 직종에 있든 소득에 의해서 의료보험료가 결정되게 만들든지 아니면 아예 완벽한 의료공영체계를 구축해서 의료보험료를 별도로 내지 않고 세금으로 전부 커버하게 만들든지 해야 할 것 같아요. 지금과 같이 주먹구구식으로 의료보험료를 결정하면 많이 버는 사람들은 많이 버는 사람대로, 적게 버는 사람들은 적게 버는 사람대로 서로 불만만 많아지고 서로 상대방들 때문에 자기가 손해를 보게 된다고 생각하면서 미워하게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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