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하순부터 지난 주 정도까지는 워낙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로메인 상추들이 다 잎은 조그매지고 (원래 작았는데, 이제 뭐 거의 엄지손가락 크기 정도로 줄었다) 잎 장수만 엄청 많아졌었다. 씹히는 감도 질겨졌고 쓴 맛만 강해졌다. 발육이 잘 안 돼서 LED 재배등도 빼 놨다.

어제, 날씨가 슬슬 풀리기 시작하는 것 같아서 배양액통도 청소하고 (한동안 키우다 보면 녹조류가 생겨서 꽤 지저분해진다) 배양액도 교체하고 녹조 끼고 서로 엉켜서 상태가 안 좋아진 뿌리들도 가위로 정리했다. 나온지 오래돼서 말라붙거나 가장자리가 타들어간 잎도 다 떼어냈다. 맨 윗단에 다시 LED도 설치했다. 주중에 잠시 짬을 내서 둘째, 셋째 단에도 LED를 설치해야겠다.

따뜻해진 날씨에 새 배양액에서 LED랑 햇빛 많이 받고 봄 새싹처럼 무럭무럭 컸으면 좋겠다. 상태 안 좋은 화분들을 대체할 로메인 상추 일곱 개, 파슬리 두 개를 스펀지에 새로 파종했다. 아마 실제 화분에 투입될 때까지는 앞으로 2-3주 더 기다려야 할 거다. 쌈채소류와 달리 허브류는 싹이 잘 안 트는 편이었는데, 이번엔 부디 성공해서 싱싱한 파슬리를 따 먹고 싶다.

(사진을 찍어놨어야 하는데 정신 없이 일하다 보니 깜빡하고 사진을 안 찍었다.)

발아는 정말 힘들게 진행되고 있다. 발아 2차시도 때 적치마 상추와 로메인 상추, 그리고 네 가지 허브(바실, 파슬리, 타임, 로즈마리) 씨앗을 심었다. 아주 얕게 했는데, 적치마 상추는 100% 싹이 텄지만 나머지는 영 비실비실하다. 로메인은 70% 이상 발아가 되긴 한 것 같은데 성장이 들쑥날쑥하고, 허브는 거의 발아가 안 됐다. 타임이 조그맣게 떡잎을 내긴 했지만, 그마저도 상태가 안 좋아서 그냥 정리해 버렸다. 


그럭저럭 싹이 튼 것들은 저농도 배양액 있는 쪽으로 옮기고, 발아가 잘 안 된 것들은 스펀지를 다시 깨끗하게 씻고 새로 씨앗을 심었다. 로메인 상추는 스펀지 하나당 한 개씩 겨우겨우 스펀지 틈에 끼어있는 모양새가 될 정도로 얕게 심었고 허브도 비슷한 깊이로, 하지만 개수는 더 넉넉하게 심어 보았다.


지난번에 발아가 돼서 좀 큰 애들은 수경재배기로 옮겼다. 열 개 남짓 되는 스펀지를 수경재배 포트에 담고 난석으로 고정을 시켰다. 필드에 관들을 연결하고, 철물점에 가서 20리터들이 기름말통(원래는 주유소에서 기름 사오는 용도로 쓰는 것. 옛날에 석유보일러 쓰던 시절 난방유 배달시키면 알바 형아가 들고 오던 그런 기름통)을 5천원 주고 사와서 저울로 수경재배비료를 계량해서 집어넣고 녹여서 배양액을 20 L 만들었다. TDS 측정기로 재 보니 890  ppm 정도 나온다. 잎채소 기준 겨울철 권장 농도랑 비슷한데, 일단 좀 써 보고 세다 싶으면 물을 좀 섞어줄까 한다. 지금은 펌프를 24시간 돌리고 있고, 일주일 정도 돌려서 잔뿌리가 좀 많이 나오고 나면 타이머로 1시간에 15분씩만 순환시키면 된다고 한다. 펌프에서 소음이 많이 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공명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하면 소음은 큰 문제는 안 된다. 어차피 가족들 일상생활 공간이 아닌 베란다에 설치했기 때문에 조금 소리 나도 별 문제는 없다. 그나저나 옮겨심은 애들도 뿌리가 스펀지에 튼튼하게 박혀있지 않아 옆으로 쓰러지려고 한다. 절반 정도는 제대로 적응을 못하고 죽어나갈 것 같은 느낌이다.


발아하면서 워낙 삽질을 많이 하고 있다 보니 아내, 어머니 등 가족들이 다 저걸 언제 키우냐며 모종 사다가 그냥 하라고 난리지만, 이왕 이렇게 된 것, 오기가 발동해서 어떻게든 그냥 해 보려고 한다. 실은 살짝 의지를 꺾은 게 있는데, 코스트코에서 산 로메인 하트의 뿌리 방향 끝을 남겨서 난석으로 고정해서 수경재배기에 넣어 보았다. 이렇게 해 두면 거기서 실뿌리가 자라고 잎도 새로 나서 수확이 가능하다고 한다. 잘 나오는지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좋아 보이면 씨도 받아서 나중에 그 씨앗으로 키울 수도 있겠다.


우리 동네는 농촌에 가까운 곳이라 밭이 많은데, 일부 논이나 포도밭을 제외하면 대부분 주인들이 직접 농사 짓기 힘들어서 연회비 받고 빌려주는 주말농장이다. 베란다 밖을 내다봐도 코앞에 주말농장이 잔뜩 있다. 그 근처에서 모종도 많이 판다. 모종을 볼 때마다 그냥 저렇게 예쁘게 키워진 모종을 사다가 씻어서 수경재배하는 게 나을까 하는 고민을 한다. 인터넷에서 흙 안 쓰고 스펀지만 사용하여 수경재배용으로 기른 모종을 파는 곳도 있다. (여기) 이건 솔직히 좀 끌리긴 했는데, 하나에 4,000원이나 하니 차마 손이 떨어지지 않았다. 노하우가 쌓이면 모종을 키워서 파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수요가 꾸준히 있을지는 매우 의문이지만...


이번 글은 사진도 없이 글만 있는데, 다음에는 꼭 사진과 함께 글을 올려야지...

지난 번에 9월 15일에 파종한 얘기를 썼는데, 안타깝게 첫 파종은 대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스펀지에 씨앗을 너무 깊이 집어넣은 게 실패의 원인이었던 것 같다. 많은 씨앗들이 제대로 빛을 보러 나오지 못했고, 일부만 발아가 되었으며, 그 중에도 살아남은 건 몇 개 되지 않았다.



위 사진이 파종한지 6일 됐을 때의 모습이다. 살아있는 놈이 거의 얼마 안 된다. 처참한 발아율... 씨앗을 너무 깊숙이 넣어서 그런지 씨앗들이 제대로 살아남지 못했다.


그나마 살아남은 놈들만 모아서 따로 배양액이 담긴 통으로 옮겼다. 배양액은 수경재배 키트에 들어있던 걸 썼는데, 일단 소량만 만들려니까 은근히 양 맞추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TDS 측정기(샤오미 수질측정기)로 TDS가 500 ppm 정도가 되도록 맞춰서 500 mL 정도를 만들었다. 요리용 1g 단위 측정 가능한 저울로는 이 정도 맞추기가 만만치 않다.



지금 살아남은 단 일곱 개 뿐인 상추들의 모습. 어떤 게 로메인이고 어떤 게 적치마 상추인지는 잘 모르겠다. 적치마 상추가 발아율이 높았기 때문에 아마도 적치마가 더 많지 않을까 추측할 뿐이다.


이런 불상사를 겪고 어제 발아를 다시 시도했다. 전에 실패한 스펀지들을 그대로 재사용했는데, 이번에는 씨 일부가 밖으로 삐져나올 정도로 얕게 심었다. 그리고 씨앗이 마르지 않도록 휴지를 한 장 덮고 그 위에 물을 뿌렸다. 



오른쪽에는 좀 큰 스펀지들이 보이는데, 그 스펀지에는 허브 씨앗을 심었다. 파슬리 로즈마리 타임 바질, 이렇게 네 가지 허브를 한 화분씩 키워서 요리할 때 잎 뜯어 넣는 용도로 쓸 계획이다. 타임 씨앗은 정말 작다. 지금까지 본 씨앗 중에 거의 제일 작은 것 같았다. 파슬리가 은근히 씨앗이 크고 단단하다.


이번에는 부디 발아가 잘 되어 본격적으로 수경재배기를 돌렸으면 좋겠다.


그리고 수경재배 키트도 좀 더 조립을 했다. 원래 보내온 왕자행거가 안타깝게도 우리 집 베란다 화분 놓는 구역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서 수직봉으로 바닥과 천장 사이에 고정하는 왕자행거를 주문했는데, 그걸 받아서 베란다에 설치했다. 원래 키트에 들어있는 왕자행거는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지만 이건 그게 안 된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일단 설치해 놓고 고정해서 쓸 생각이라면 이동형 왕자행거에 비해 좀 더 깔끔해 보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위 사진은 키트를 대충 조립한 사진. 아래쪽에 있는 흰 통에 배양액이 들어가고, 행거에 달린 금속 브라켓이 수경재배 필드를 지지하는 구조다. 저 필드도 플라스틱으로 가볍고, 그 속에 배양액도 가득 차 있지 않고 바닥에 거의 1 cm 미만으로 깔려서 흘러가는 정도인 데다가 식물이 담기는 화분도 구멍 숭숭 뚫린 플라스틱 화분이고 화분 안에도 스펀지와 난석만 조금 들어가 있어서 무게가 얼마 나가지 않는다. 그래서 왕자행거로도 지지력은 충분하고 넘치는 수준이다. 오른쪽 사진은 일단 필드까지 다 꽂은 상태. 여기에 배관 연결하고, 발아 끝내고 본잎이 5-6장 정도까지 나면 화분으로 옮겨서 저기에 집어넣고 본격적으로 키우는 거라고 한다. LED 고정은 적당히 글루건과 나무조각이나 골판지, 고무줄 등을 활용해서 해 줘야 할 것 같다. 정식으로 하려면 재료비가 너무 많이 들어. 아직 베란다에 짐이 잔뜩 쌓여 있어서 정리가 안 돼 있고, 베란다에 전원 플러그가 어디 있는지 잘 모르겠다. 만약 전원 플러그가 없으면 끌어와야 하는데 대체 어디서 끌어와야 하나 고민된다.

며칠 전에 참쉬운 수경재배에서 주문한 하이드로가든 3단 행거킷이 추석 연휴 전날에 배송됐다. 하이드로가든 3단 행거킷에는 다음과 같은 아이템들이 들어있다.


  • 왕자행거
  • GG 필드 6개 (그 중 두 개는 입수구-출수구 모델, 네 개는 출수구-출수구 모델)
  • 필드 거치대 3 세트 (총 6개)
  • 포트 49개 (필드 하나당 8개씩 총 48개 설치 가능)
  • 52리터 배양액 통 (입수용 퀵커넥터가 두 개 있음)
  • 입수 호스, 출수 호스 (호스 직경이 다름)
  • 난석 (혹시 모자랄까, 더 사야 하나 걱정했는데 전혀 모자랄 것 같진 않음)
  • 20W 수중 모터
  • 수경재배 스펀지
  • 비료
  • 전원 타이머 (타이머가 왜 필요한가 했더니 포트에 옮겨심은 식물이 어느 정도 적응이 되면 배양액을 항상 순환시키지 않고 한 시간에 15분 정도씩만 돌리라고 되어 있다. 배양액 순환하는 데 들어가는 전기요금도 예상치의 1/4 정도면 충분할 듯)
  • 씨앗 (적치마 상추 3000립 한 팩)

기본으로 주는 씨앗이 정해져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로메인을 주로 키울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면 로메인 씨앗을 보내달라고 했다. 재고가 있으면 로메인 씨앗으로 보내주시겠다고 게시판에 답변을 해 주셨었는데, 없었는지 그냥 적치마 상추 씨앗을 보내주셨다.

오픈마켓을 보니 다이소에서 각종 씨앗도 다양하게 파는 것 같아서 막히는 길을 뚫고 한참을 운전해서 찾아갔다. 근데 막상 오프라인 매장에 가 보니 (나름 2층짜리 큼직한 매장인데도) 씨앗은 4-5 종류만 팔고 있었다. 그 중에 로메인은 없었다. 그래서 집에서 더 가까운 종묘사에 가서 씨앗을 사 왔다. 처음부터 그렇게 할 걸 괜히 다이소까지 갔다. 로메인, 청경채, 케일 씨앗을 사 왔는데, 씨앗이 은근히 비싸다. (세 종류에 8천원 준 것 같다. 원래 우리 둘째의 의견에 따라 브뤼셀 스프라우츠(미니 양배추)도 집었으나 재배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해서 내려놓았다. 하긴 브뤼셀 스프라우츠가 워낙 키가 크게 자라는 놈이라 우리가 사용할 수경재배 키트에는 안 어울리기도 했을 것 같다.) 허브 씨앗도 사고 싶었는데 안 팔았다. 몇 군데 돌아봤는데, 허브 씨앗은 그냥 인터넷에서 사라는 답변을 들었다.


위 사진에서 맨 왼쪽이 키트에 포함되었던 적상추 씨앗이고, 나머지 셋은 종묘사에 가서 사온 씨앗이다. 결국 구하지 못한 허브 씨앗은 지마켓에서 주문했다. 이번 주 중에 받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수경재배는 씨앗에서 시작할 수도 있고 모종을 사서 시작할 수도 있다. 모종을 사서 시작하면 결과물도 훨씬 빨리 얻을 수 있고, 발아하는 수고를 덜 수 있긴 하지만, 모종이 흙에 담겨 오기 때문에 수경재배를 하는 경우에는 다른 단점이 생길 수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모종에 (그리고 모종과 함께 온 흙에) 병충해의 원인이 딸려오는 것이다. 병충해 신경 쓰기 싫어서 수경재배를 했는데 모종에 딸려온 병충해 때문에 고생하면 억울하지 않은가! 그리고 뿌리에 묻어있는 흙 때문에 배양액이 오염되는 것도 골치 아프다고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냥 깨끗하게 씨앗으로 싹 틔우는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발아에 실패하거나 할 가능성도 있지만 그래도 일단 해 봐야지.

발아할 때는 아래와 같은 수경재배 스펀지를 사용한다.



몇 가지 사이즈가 있는데, 위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씨앗을 심기 좋게 가운데 홈이 나 있고, 잡아당기면 육면체 단위로 쉽게 뜯어져서 씨앗을 틔운 후에 재배용 화분으로 스펀지 채로 옮겨심기 좋다.


(씨앗을 물에 불려서 냉장고에 3-4일 넣어 뒀다가 꺼내서 싹을 틔우면 발아율이 올라가고, 시간이 잘 맞춰져서 모든 씨앗들이 거의 비슷하게 올라온다고 한다. 이번에는 그걸 잘 모르고 그냥 마른 씨앗을 스펀지에 넣고는 물에 적셔서 발아시키고 있다. 나처럼 소규모로 베란다에서 할 때는 씨앗을 여러 개 심고 솎아내는 게 큰 일이 아니어서 발아율이 좀 떨어져도 무방한데, 본격적으로 커다란 식물공장을 운영할 때는 솎아내는 것도 인건비가 들어가는 일이라 발아율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게 큰 일일 것 같다.)


일단 적상추와 로메인만 싹을 틔우기로 했다. 적상추 12개, 로메인 32개, 총 44개의 스펀지를 이용했고, 스펀지 한 칸에 씨앗을 세 개씩 집어넣었다. 나중에 싹이 잘 트고 나서 어느 정도 크면 하나씩만 남기고 솎아내서 더 키운 후에 수경재배 포트로 옮기고 본격적인 수경재배를 시작할 예정이다. 48개의 재배포트를 쓸 수 있으니 나머지 네 칸에는 몇 가지 허브를 키워볼 생각이다. (바질, 로즈마리, 타임, 파슬리. 이 네 작물을 선택한 이유는 집에서 요리할 때 즐겨쓰는 허브이기도 하지만, 상추 계열하고 비슷한 배양액 농도에서 자랄 수 있는 허브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적상추와 로메인은 씨앗 모양이 거의 똑같다. 2-3 mm 정도 길이의 길쭉한 모양인데, 다행히(?) 적상추는 씨앗이 약간 보라색이라서 어렵지 않게 구분할 수 있었다.



씨앗은 저 정도로 스펀지 윗면에서 3 mm 정도 깊이에 들어가게 넣었다. 좀 얕게 넣은 것 같은 느낌도 드는데, 자리를 잘 잡길 바란다. (식물 전문가 선생님의 조언을 받아 보니 너무 깊은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한다. 다음엔 더 얕게 넣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열심히 핀셋으로 씨앗을 세 개씩 스펀지에 집어넣고 있는 아동노동의 현장아이들의 모습이다.


이렇게 씨앗을 집어넣은 스펀지는 적당한 그릇에 담아 물을 적셔야 한다. 마침 며칠 전에 받은 아이스크림 케익 통이 남은 게 있길래 거기에 물을 좀 넣고 스펀지를 넣었다. 떡잎이 나오기 전까지는 어두운 데 두는 게 좋다고 해서 뚜껑도 덮어놓았다.



스펀지 높이의 1/3 정도가 되도록 물을 붓고 스펀지를 손바닥으로 쭉 눌러서 공기가 한 번 빠져나가고 물을 쭉 빨아들이게 적셔준 다음에 뚜껑을 덮어 두었다.


이렇게 한 게 9월 15일 저녁. 이제 4일이 다 되어 가는데 싹이 머리를 내민 게 몇 개 나타난 정도다. 몇 시간 만에 싹이 올라오기 시작했다는 글도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잘못 본 건가... ㅠㅠ (싹이 나는 데는 빨라도 이틀은 걸리고, 일주일을 기다려야 나올 수도 있다고 한다.) 어쨌든 이제 싹이 어느 정도 올라오면 햇빛도 쪼여주고 잎이 몇 개 나오면 맹물이 아닌 낮은 농도의 배양액을 써 줘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본잎이 4-5개 정도 되면 재배용 포트로 옮겨 심고 본격적인 수경재배를 시작하게 될 듯하다.


우리 집 베란다 구조 때문에 아직 수경재배 키트는 전혀 조립을 하지 않았다. 베란다에 화분 같은 거 놓을 수 있는 구획이 (얕은 콘크리트 턱으로) 나뉘어 있는데 그 공간에 왕자 행거가 들어가질 않는다. 왕자행거의 깊이(앞뒤 간격)가 43 cm 정도라는데 그 공간은 깊이가 38 cm가 조금 안 된다. 배양액 통으로 쓰이는 52 L 짜리 플라스틱 통이 들어가는 건 그나마 다행이다. 처음에는 알루미늄 프로파일로 깔끔하게 거치대를 만들어볼까 했는데, 은근히 재료비가 많이 들어가서 (채소값 아낄라고 시작한 건데 말이지 ㅠㅠ) 안타깝게도 다음 기회로 미루고, 지마켓에서 이동형이 아닌 바닥-천장 고정형 왕자행거를 주문했다. 키트에 포함된 필드 거치대(지름 28-32 cm의 봉에 끼울 수 있게 되어 있음)와의 호환성을 감안해서 수직 봉 지름도 맞고 수평 간격도 75 - 130 cm로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물건으로 고르다 보면 링크된 것 중 B형을 고를 수 밖에 없다. 그래도 17,900원의 가격에 대단한 사용성을 확보할 수 있다. (알루미늄 프로파일을 쓸 경우 제일 저렴한 2020형을 사용하더라도 이런저런 부품 포함하면 5만원을 훌쩍 넘어가는 것 같았다. 3030 프로파일 쓰면 10만원도 넘길 기세...) 어쨌든 못 쓰게 된 이동형 왕자행거는 애들 방 옷걸이로 다시 태어났으니 다행이다.


식물별로 적절한 배양액 농도가 있어서, 물에다가 비료를 탈 때 그 농도를 잘 맞춰야 한단다. TDS (Total dissolved solids) 농도나 전기전도도(EC; Electro-conductivity)를 측정하는 장비가 있으면 일이 훨씬 수월해진다고 한다. 일단은 저렴하게 유사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샤오미의 수질측정기를 주문했다. (9900원) 나중에는 EC 센서를 사든 만들든 해서 배양액 농도 모니터링/제어도 해 보고 싶지만 일단은 간단하게 배양액 농도를 수동으로 맞추는 정도에 만족해야지.


추석 연휴가 끝났으니 조만간 행거랑 허브 씨앗이랑 수질 측정기가 배달될 것 같다. 싹이 좀 올라오면 배양액 만들어서 싹 튼 스펀지에 주고, 햇빛도 많이 쬐어주고 (모자라면 LED 띠가 오기 전까지는 애들 책상의 LED 스탠드라도 임시로 투입해야지 ㅠㅠ) 해야 한다. 베란다도 아직 이사의 여파가 다 가시질 않아서 어수선한데 얼른 정리하고 행거 달고 수경재배기를 설치해야겠다.

우리나라는 농사를 짓기에 그다지 좋은 곳이 아니다. 일단 사계절이 뚜렷하기 때문에 연교차도 크고 키울 수 있는 작물에 제약도 많다. 여름은 엄청 덥고 겨울은 엄청 추워서 작물을 기를 수 있는 기간도 짧고, 여름에는 수시로 태풍이나 집중호우 같은 것 때문에 수해를 입는다. 차라리 물만 확보할 수 있다면 사막이 농사 짓기에 더 좋을 것 같다.


광원만 괜찮은 게 있다면 식물공장을 만들어서 실내에서 외부 환경에 휘둘리지 않고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 실제로 일본의 일부 기업에서 사업화를 시작한지 좀 됐다. LED 광원 가격이 엄청나게 떨어지면서 매우 높은 효율로 조명을 할 수 있게 됐고, 솔라셀 가격도 떨어져서 솔라셀로 발전소를 만들고 그 전력으로 식물에 빛을 공급하면 순수하게 탄소를 흡수하기만 하는 공장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탄소배출권 장사하기에 매우 좋은 사업이겠다) 우리나라에서도 일부 대기업이 시도했으나 농민단체의 반대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 같다. ㅠㅠ


어떤 사람들은 무농약 유기농 채소 같은 걸 먹고 싶어서 집에서 채소를 기르는 것 같은데 난 솔직히 그런 데는 별 관심이 없다. 농약이나 화학비료가 없었다면 인류의 삶의 질은 여전히 매우 끔찍했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굳이 유기농을 고집한다거나 그런 스타일이 아니다. 정말 순수하게 호기심과 식자재비 절감을 위한 일일 뿐이다. 


(식자재비 절감을 위해서라면 술을 제일 먼저 담가 먹어야 할 것 같긴 한데...ㅠㅠ)


어쨌든, 이런저런 이유로 몇 년 전부터 식물공장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식물공장을 하려면 당연히 수경재배 방법을 쓰게 될 텐데, 마침 가정용 베란다 수경재배 DIY 키트를 파는 데를 찾았다. 몇 년 전부터 블로그에 수경재배 실험 결과 등을 올리던 분인 것 같은데, 쌓인 경험을 바탕으로 본격적으로 수경재배용품 파는 사업을 시작한 듯하다.


참쉬운 수경재배: http://www.easyhydro.co.kr/


여기서 행거에 설치할 수 있는 이동형 수경재배 키트를 주문했다. 3단으로 총 48개의 조그만 화분에 식물을 재배할 수 있는 키트인데, 일단은 우리 식구들이 제일 즐겨먹는 샐러드용 채소 중 하나인 로메인 상추를 집중공략해 볼 생각이다. 일반 상추에 비해 구하기가 어렵운 채소이기도 하고, 비싸서 직접 키웠을 때 이득이 크기도 하고, 쌈으로 먹어도 좋고 샐러드로 먹어도 좋고 샌드위치에 넣어 먹어도 좋은 다용도 채소이기도 해서 장점이 많다.


우리나라 로메인 가격이 대략 한 개에 3000원이 좀 안 되는 것 같다. (한 뿌리를 200 g 정도로 잡았고, 1 kg에 14500원 정도에 파는 경우로 계산함) 내가 주문한 수경재배 키트가 동시에 48뿌리를 키울 수 있으니 한 바퀴 돌리면 144000원, 대충 두 번 돌리면 설치비 나올 듯. 너무 낙관적인 예측인가?


베란다가 남향이라 아직은 별 걱정은 안 하는데, 강한 햇빛을 충분히 받는 게 중요하다고 한다. 아무래도 베란다 통유리가 닦기 힘들어서 지저분하기도 하니 광량이 좀 안 좋을 수 밖에 없다. 이제 가을 겨울 되면 광량이 더 부족해질 것 같아서 보완이 필요하긴 할 것 같다. 그래서 LED를 알아보았다. 참쉬운 수경재배에서 LED 광원도 팔긴 하는데, 좀 많이 비싸다. 5050 SMD LED 72개 달린 1 m 짜리 LED strip 네 개 달아서 무려 194,000원에 판다. 이걸 세 층에다가 모두 달면 LED 값만 60만원에 달한다. 물론 LED strip이 식물 재배용 광원(미국 드라마 같은 데서 지하실에서 대마초 키울 때 쓰는 것 같은 빨간색 파란색 섞인 빛)에 맞게 빨간색, 백색, 청색 LED를 섞은 형태의 주문제작품인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너무 비싸다. 어차피 충분히 밝으면 백색광도 괜찮기 때문에 그냥 자작해서 쓰기로 했다. 이베이에서 (적색 쪽을 더 많이 흡수하기 때문에 색온도가 낮은 게 유리한 것 같아서) 따뜻한 흰색(백열전구랑 비슷한 색) 5630 SMD LED가 36개 달린 50 cm 짜리 LED strip을 20개 들이 한 팩 주문했다. 중국에서 발송되고 무료배송이긴 하나 배송에 거의 한 달 걸릴 듯하다. 근데 가격은 43불 정도. 5630 LED는 5050 LED에 비해 광량이 거의 2-3배에 달하기 때문에 50cm 두 개씩 이어서 1 m 짜리를 만들어서 장착하는 형태로 하면 20개 중에서 12개만 쓰면 내가 주문한 3단 구성에 빛을 충분히 공급할 수 있다.


(전문가의 조언을 들어보니 식물들이 적색 청색 광원 하에서 훨씬 빠르게 자란다고 한다. 광합성을 하는 엽록소의 흡수 스펙트럼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초록색에 해당하는 빛은 엽록소에서는 거의 쓰지 않는다. 대신 적색 청색 빛만 쓸 때는 예를 들어 토마토의 라이코펜 같은 영양성분의 함량이 떨어질 수도 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채소별 최적 파장 조합에 대한 연구도 많이 이뤄졌다고 한다. 성장 속도를 빠르게 하는 게 주 목적이 아니라면 태양광에 가까운, 연색지수 CRI가 100에 가까운 LED를 쓰는 게 좋다고 한다.)


(재배등 용도로 적색:청색=3:1로 혼합된 재배용 LED 스트립도 주문했다. 마찬가지로 이베이에서 샀고, 중국 발송이고 배송료가 없지만 배송해서 받을 때까지 오래 걸린다. 50 cm 짜리 20개에 총 69.33불. 나중에 백색광이랑 적청광이랑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여기에다가 주변광+LED광의 합이 거의 일정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자동으로 제어를 하고, 정해진 시간에 불이 켜지고 꺼지게 조절하는 기능을 arduino나 raspberry pi로 구현해서 장착해 볼까 생각중이다. 식물을 계속 키우다 보면 아마 배양액 양도 줄고, 농도도 변할 텐데, 좀 오버스럽지만, 배양액의 농도(보통 전기전도도로 측정함)와 수위를 측정해서 필요한 만큼 물을 보충하고 배양액 원액을 보충하는 (이건 수도꼭지나 맹물통에 연결된 솔레노이드 밸브를 조절하고 간단하게 자작한 주사기 펌프를 제어하는 방식으로 구현하면 될 듯) 제어기능도 구현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상황을 간단한 웹 서비스를 통해 바로바로 대시보드 같은 걸로 보여주는 것도 좋을 것 같고, 저렴한 웹캠 같은 걸로 원격 모니터링도 할 수 있게 해 놓아도 좋을 것 같고...


애초에 주말농장을 한다든가 실내에 화분을 놓고 채소를 키우는 데는 별로 끌리지 않은 이유는 1. 내 성격상 주말마다 (주중에도 종종) 밭에 가서 일하는 걸 꾸준히 할 것 같지 않은 데다가 2. 날씨라든가 병해, 충해 등 내가 쉽게 제어하기 힘든 요인 때문에 타격을 받는 게 정말 싫기 때문이다. 신과 옷, 기구에 묻은 흙 청소도 만만치 않은 일이고, 흙을 쓰다 보면 필히 잡초나 벌레 같은 게 따라올 수 밖에 없고... 수경재배는 이런 문제는 별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씨앗으로 싹 내서 그걸 수경재배하니 흙을 볼 필요가 없고, 그냥 아파트 베란다에서 하니까 막내 정후만 빼면 크게 사고가 터질 일도 없다. 시스템을 잘 갖춰 놓으면 처음에 싹을 틔워서 수경재배기에 옮겨놓고 나면 별로 손이 가지 않는다는 것도 어마어마한 장점이다.


그리고 장비를 구축하고 그 장비로 실험을 하는 것과 비슷한 면이 많기 때문에 내 체질에 잘 맞는 것 같다. 처음에 시스템 구축하는 것도 힘들지만 재미있고, 내가 좋아하는 일이기도 하고, 그 후에 계속해서 디버깅하고 업그레이드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유지비로 가장 비싼 건 아마 전기일 것 같은데, LED 조명(5630 SMD LED 36개짜리가 평균 7 W 먹고 그걸 12개 쓰니까 84W. 소형 SMPS 효율이 얼마 정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대충 안전빵으로 50% 언저리 잡아서 LED 조명 및 arduino 구동 등에 200W 쓴다고 쳐 보자)을 풀로 하루에 12시간씩 켜 놓는다고 치면 한 달에 72 kWh 정도 사용한다. 이 정도면 보통 냉장고 한 대가 한 달에 잡아먹는 전력량하고 비슷하다. 생각보다는 크네. 물론 햇빛에 따라서 확 달라질 수 있으니 실제 소모량은 다시 좀 따져봐야 할 것 같다. 24시간 돌려야 하는 배양액 순환용 펌프도 20W * 24시간 * 30일 하면 대략 14.4 kWh 나오니까 이것도 은근 전력을 먹긴 한다. 본격적으로 하는 사람이라면 농업용 전력을 쓰면 매우 저렴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아이들하고 같이 장비를 만들고 시스템 구축하는 과정이 재미있을 것 같다. 식물을 기르면서 관찰할 수 있기도 하고, 아두이노 같은 걸로 하드웨어도 구성하고 소프트웨어도 만들면서 재미있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