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아는 정말 힘들게 진행되고 있다. 발아 2차시도 때 적치마 상추와 로메인 상추, 그리고 네 가지 허브(바실, 파슬리, 타임, 로즈마리) 씨앗을 심었다. 아주 얕게 했는데, 적치마 상추는 100% 싹이 텄지만 나머지는 영 비실비실하다. 로메인은 70% 이상 발아가 되긴 한 것 같은데 성장이 들쑥날쑥하고, 허브는 거의 발아가 안 됐다. 타임이 조그맣게 떡잎을 내긴 했지만, 그마저도 상태가 안 좋아서 그냥 정리해 버렸다. 


그럭저럭 싹이 튼 것들은 저농도 배양액 있는 쪽으로 옮기고, 발아가 잘 안 된 것들은 스펀지를 다시 깨끗하게 씻고 새로 씨앗을 심었다. 로메인 상추는 스펀지 하나당 한 개씩 겨우겨우 스펀지 틈에 끼어있는 모양새가 될 정도로 얕게 심었고 허브도 비슷한 깊이로, 하지만 개수는 더 넉넉하게 심어 보았다.


지난번에 발아가 돼서 좀 큰 애들은 수경재배기로 옮겼다. 열 개 남짓 되는 스펀지를 수경재배 포트에 담고 난석으로 고정을 시켰다. 필드에 관들을 연결하고, 철물점에 가서 20리터들이 기름말통(원래는 주유소에서 기름 사오는 용도로 쓰는 것. 옛날에 석유보일러 쓰던 시절 난방유 배달시키면 알바 형아가 들고 오던 그런 기름통)을 5천원 주고 사와서 저울로 수경재배비료를 계량해서 집어넣고 녹여서 배양액을 20 L 만들었다. TDS 측정기로 재 보니 890  ppm 정도 나온다. 잎채소 기준 겨울철 권장 농도랑 비슷한데, 일단 좀 써 보고 세다 싶으면 물을 좀 섞어줄까 한다. 지금은 펌프를 24시간 돌리고 있고, 일주일 정도 돌려서 잔뿌리가 좀 많이 나오고 나면 타이머로 1시간에 15분씩만 순환시키면 된다고 한다. 펌프에서 소음이 많이 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공명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하면 소음은 큰 문제는 안 된다. 어차피 가족들 일상생활 공간이 아닌 베란다에 설치했기 때문에 조금 소리 나도 별 문제는 없다. 그나저나 옮겨심은 애들도 뿌리가 스펀지에 튼튼하게 박혀있지 않아 옆으로 쓰러지려고 한다. 절반 정도는 제대로 적응을 못하고 죽어나갈 것 같은 느낌이다.


발아하면서 워낙 삽질을 많이 하고 있다 보니 아내, 어머니 등 가족들이 다 저걸 언제 키우냐며 모종 사다가 그냥 하라고 난리지만, 이왕 이렇게 된 것, 오기가 발동해서 어떻게든 그냥 해 보려고 한다. 실은 살짝 의지를 꺾은 게 있는데, 코스트코에서 산 로메인 하트의 뿌리 방향 끝을 남겨서 난석으로 고정해서 수경재배기에 넣어 보았다. 이렇게 해 두면 거기서 실뿌리가 자라고 잎도 새로 나서 수확이 가능하다고 한다. 잘 나오는지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좋아 보이면 씨도 받아서 나중에 그 씨앗으로 키울 수도 있겠다.


우리 동네는 농촌에 가까운 곳이라 밭이 많은데, 일부 논이나 포도밭을 제외하면 대부분 주인들이 직접 농사 짓기 힘들어서 연회비 받고 빌려주는 주말농장이다. 베란다 밖을 내다봐도 코앞에 주말농장이 잔뜩 있다. 그 근처에서 모종도 많이 판다. 모종을 볼 때마다 그냥 저렇게 예쁘게 키워진 모종을 사다가 씻어서 수경재배하는 게 나을까 하는 고민을 한다. 인터넷에서 흙 안 쓰고 스펀지만 사용하여 수경재배용으로 기른 모종을 파는 곳도 있다. (여기) 이건 솔직히 좀 끌리긴 했는데, 하나에 4,000원이나 하니 차마 손이 떨어지지 않았다. 노하우가 쌓이면 모종을 키워서 파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수요가 꾸준히 있을지는 매우 의문이지만...


이번 글은 사진도 없이 글만 있는데, 다음에는 꼭 사진과 함께 글을 올려야지...

며칠 전에 참쉬운 수경재배에서 주문한 하이드로가든 3단 행거킷이 추석 연휴 전날에 배송됐다. 하이드로가든 3단 행거킷에는 다음과 같은 아이템들이 들어있다.


  • 왕자행거
  • GG 필드 6개 (그 중 두 개는 입수구-출수구 모델, 네 개는 출수구-출수구 모델)
  • 필드 거치대 3 세트 (총 6개)
  • 포트 49개 (필드 하나당 8개씩 총 48개 설치 가능)
  • 52리터 배양액 통 (입수용 퀵커넥터가 두 개 있음)
  • 입수 호스, 출수 호스 (호스 직경이 다름)
  • 난석 (혹시 모자랄까, 더 사야 하나 걱정했는데 전혀 모자랄 것 같진 않음)
  • 20W 수중 모터
  • 수경재배 스펀지
  • 비료
  • 전원 타이머 (타이머가 왜 필요한가 했더니 포트에 옮겨심은 식물이 어느 정도 적응이 되면 배양액을 항상 순환시키지 않고 한 시간에 15분 정도씩만 돌리라고 되어 있다. 배양액 순환하는 데 들어가는 전기요금도 예상치의 1/4 정도면 충분할 듯)
  • 씨앗 (적치마 상추 3000립 한 팩)

기본으로 주는 씨앗이 정해져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로메인을 주로 키울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면 로메인 씨앗을 보내달라고 했다. 재고가 있으면 로메인 씨앗으로 보내주시겠다고 게시판에 답변을 해 주셨었는데, 없었는지 그냥 적치마 상추 씨앗을 보내주셨다.

오픈마켓을 보니 다이소에서 각종 씨앗도 다양하게 파는 것 같아서 막히는 길을 뚫고 한참을 운전해서 찾아갔다. 근데 막상 오프라인 매장에 가 보니 (나름 2층짜리 큼직한 매장인데도) 씨앗은 4-5 종류만 팔고 있었다. 그 중에 로메인은 없었다. 그래서 집에서 더 가까운 종묘사에 가서 씨앗을 사 왔다. 처음부터 그렇게 할 걸 괜히 다이소까지 갔다. 로메인, 청경채, 케일 씨앗을 사 왔는데, 씨앗이 은근히 비싸다. (세 종류에 8천원 준 것 같다. 원래 우리 둘째의 의견에 따라 브뤼셀 스프라우츠(미니 양배추)도 집었으나 재배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해서 내려놓았다. 하긴 브뤼셀 스프라우츠가 워낙 키가 크게 자라는 놈이라 우리가 사용할 수경재배 키트에는 안 어울리기도 했을 것 같다.) 허브 씨앗도 사고 싶었는데 안 팔았다. 몇 군데 돌아봤는데, 허브 씨앗은 그냥 인터넷에서 사라는 답변을 들었다.


위 사진에서 맨 왼쪽이 키트에 포함되었던 적상추 씨앗이고, 나머지 셋은 종묘사에 가서 사온 씨앗이다. 결국 구하지 못한 허브 씨앗은 지마켓에서 주문했다. 이번 주 중에 받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수경재배는 씨앗에서 시작할 수도 있고 모종을 사서 시작할 수도 있다. 모종을 사서 시작하면 결과물도 훨씬 빨리 얻을 수 있고, 발아하는 수고를 덜 수 있긴 하지만, 모종이 흙에 담겨 오기 때문에 수경재배를 하는 경우에는 다른 단점이 생길 수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모종에 (그리고 모종과 함께 온 흙에) 병충해의 원인이 딸려오는 것이다. 병충해 신경 쓰기 싫어서 수경재배를 했는데 모종에 딸려온 병충해 때문에 고생하면 억울하지 않은가! 그리고 뿌리에 묻어있는 흙 때문에 배양액이 오염되는 것도 골치 아프다고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냥 깨끗하게 씨앗으로 싹 틔우는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발아에 실패하거나 할 가능성도 있지만 그래도 일단 해 봐야지.

발아할 때는 아래와 같은 수경재배 스펀지를 사용한다.



몇 가지 사이즈가 있는데, 위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씨앗을 심기 좋게 가운데 홈이 나 있고, 잡아당기면 육면체 단위로 쉽게 뜯어져서 씨앗을 틔운 후에 재배용 화분으로 스펀지 채로 옮겨심기 좋다.


(씨앗을 물에 불려서 냉장고에 3-4일 넣어 뒀다가 꺼내서 싹을 틔우면 발아율이 올라가고, 시간이 잘 맞춰져서 모든 씨앗들이 거의 비슷하게 올라온다고 한다. 이번에는 그걸 잘 모르고 그냥 마른 씨앗을 스펀지에 넣고는 물에 적셔서 발아시키고 있다. 나처럼 소규모로 베란다에서 할 때는 씨앗을 여러 개 심고 솎아내는 게 큰 일이 아니어서 발아율이 좀 떨어져도 무방한데, 본격적으로 커다란 식물공장을 운영할 때는 솎아내는 것도 인건비가 들어가는 일이라 발아율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게 큰 일일 것 같다.)


일단 적상추와 로메인만 싹을 틔우기로 했다. 적상추 12개, 로메인 32개, 총 44개의 스펀지를 이용했고, 스펀지 한 칸에 씨앗을 세 개씩 집어넣었다. 나중에 싹이 잘 트고 나서 어느 정도 크면 하나씩만 남기고 솎아내서 더 키운 후에 수경재배 포트로 옮기고 본격적인 수경재배를 시작할 예정이다. 48개의 재배포트를 쓸 수 있으니 나머지 네 칸에는 몇 가지 허브를 키워볼 생각이다. (바질, 로즈마리, 타임, 파슬리. 이 네 작물을 선택한 이유는 집에서 요리할 때 즐겨쓰는 허브이기도 하지만, 상추 계열하고 비슷한 배양액 농도에서 자랄 수 있는 허브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적상추와 로메인은 씨앗 모양이 거의 똑같다. 2-3 mm 정도 길이의 길쭉한 모양인데, 다행히(?) 적상추는 씨앗이 약간 보라색이라서 어렵지 않게 구분할 수 있었다.



씨앗은 저 정도로 스펀지 윗면에서 3 mm 정도 깊이에 들어가게 넣었다. 좀 얕게 넣은 것 같은 느낌도 드는데, 자리를 잘 잡길 바란다. (식물 전문가 선생님의 조언을 받아 보니 너무 깊은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한다. 다음엔 더 얕게 넣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열심히 핀셋으로 씨앗을 세 개씩 스펀지에 집어넣고 있는 아동노동의 현장아이들의 모습이다.


이렇게 씨앗을 집어넣은 스펀지는 적당한 그릇에 담아 물을 적셔야 한다. 마침 며칠 전에 받은 아이스크림 케익 통이 남은 게 있길래 거기에 물을 좀 넣고 스펀지를 넣었다. 떡잎이 나오기 전까지는 어두운 데 두는 게 좋다고 해서 뚜껑도 덮어놓았다.



스펀지 높이의 1/3 정도가 되도록 물을 붓고 스펀지를 손바닥으로 쭉 눌러서 공기가 한 번 빠져나가고 물을 쭉 빨아들이게 적셔준 다음에 뚜껑을 덮어 두었다.


이렇게 한 게 9월 15일 저녁. 이제 4일이 다 되어 가는데 싹이 머리를 내민 게 몇 개 나타난 정도다. 몇 시간 만에 싹이 올라오기 시작했다는 글도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잘못 본 건가... ㅠㅠ (싹이 나는 데는 빨라도 이틀은 걸리고, 일주일을 기다려야 나올 수도 있다고 한다.) 어쨌든 이제 싹이 어느 정도 올라오면 햇빛도 쪼여주고 잎이 몇 개 나오면 맹물이 아닌 낮은 농도의 배양액을 써 줘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본잎이 4-5개 정도 되면 재배용 포트로 옮겨 심고 본격적인 수경재배를 시작하게 될 듯하다.


우리 집 베란다 구조 때문에 아직 수경재배 키트는 전혀 조립을 하지 않았다. 베란다에 화분 같은 거 놓을 수 있는 구획이 (얕은 콘크리트 턱으로) 나뉘어 있는데 그 공간에 왕자 행거가 들어가질 않는다. 왕자행거의 깊이(앞뒤 간격)가 43 cm 정도라는데 그 공간은 깊이가 38 cm가 조금 안 된다. 배양액 통으로 쓰이는 52 L 짜리 플라스틱 통이 들어가는 건 그나마 다행이다. 처음에는 알루미늄 프로파일로 깔끔하게 거치대를 만들어볼까 했는데, 은근히 재료비가 많이 들어가서 (채소값 아낄라고 시작한 건데 말이지 ㅠㅠ) 안타깝게도 다음 기회로 미루고, 지마켓에서 이동형이 아닌 바닥-천장 고정형 왕자행거를 주문했다. 키트에 포함된 필드 거치대(지름 28-32 cm의 봉에 끼울 수 있게 되어 있음)와의 호환성을 감안해서 수직 봉 지름도 맞고 수평 간격도 75 - 130 cm로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물건으로 고르다 보면 링크된 것 중 B형을 고를 수 밖에 없다. 그래도 17,900원의 가격에 대단한 사용성을 확보할 수 있다. (알루미늄 프로파일을 쓸 경우 제일 저렴한 2020형을 사용하더라도 이런저런 부품 포함하면 5만원을 훌쩍 넘어가는 것 같았다. 3030 프로파일 쓰면 10만원도 넘길 기세...) 어쨌든 못 쓰게 된 이동형 왕자행거는 애들 방 옷걸이로 다시 태어났으니 다행이다.


식물별로 적절한 배양액 농도가 있어서, 물에다가 비료를 탈 때 그 농도를 잘 맞춰야 한단다. TDS (Total dissolved solids) 농도나 전기전도도(EC; Electro-conductivity)를 측정하는 장비가 있으면 일이 훨씬 수월해진다고 한다. 일단은 저렴하게 유사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샤오미의 수질측정기를 주문했다. (9900원) 나중에는 EC 센서를 사든 만들든 해서 배양액 농도 모니터링/제어도 해 보고 싶지만 일단은 간단하게 배양액 농도를 수동으로 맞추는 정도에 만족해야지.


추석 연휴가 끝났으니 조만간 행거랑 허브 씨앗이랑 수질 측정기가 배달될 것 같다. 싹이 좀 올라오면 배양액 만들어서 싹 튼 스펀지에 주고, 햇빛도 많이 쬐어주고 (모자라면 LED 띠가 오기 전까지는 애들 책상의 LED 스탠드라도 임시로 투입해야지 ㅠㅠ) 해야 한다. 베란다도 아직 이사의 여파가 다 가시질 않아서 어수선한데 얼른 정리하고 행거 달고 수경재배기를 설치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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