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을러서 사진이 없다. 글로만...


돼지고기는 등심과 안심이 비교적 저렴한 편이다. 냉장 돼지고기를 부위별로 파는 어떤 지마켓 판매자의 판매가격을 참고하자면, 100g당 가격은 다음과 같다.


뒷다리살(지방 포함) 558원

뒷다리살(지방 미포함) 598원

등심 1080원

안심 1080원

앞다리(껍데기 미포함) 1360원

앞다리(껍데기 포함) 1300원

갈비(찜용) 1380원

갈비(구이용) 1410원

등갈비 2200원

삼겹살(일반) 2180원

삼겹살(벌집 또는 뼈 제거) 2280원

목살 1980원

갈매기살 2580원

항정살 2700원

가브리살 2500원

등뼈 425원


볼 수 있듯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부위, 돼지고기 구이집이나 보쌈집에서 많이 소비되는 부위는 확 비싸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확 싸다. 등심 안심은 뒷다리살 같은 것보다는 비싸지만 삼겹살이나 목살 같은 것보다는 꽤 싸기 때문에 적은 식재료로 넉넉하게 먹을 수 있다. 돼지 등심/안심은 소의 등심 안심과 형태는 비슷하지만 고기의 질감은 많이 다르다. 둘 다 기름이 거의 없는 살코기라서 조리를 잘못하면 잘못 익히 닭가슴살처럼 꽤나 퍽퍽하고 맛 없게 될 수 있다 보니 인기가 없는 편이다.


하지만 수비드로 조리를 하면 질감이 정말 신기하리만치 달라진다. 등심을 예전에 수비드로 익혀 먹었을 때 촉촉하고 쫀득한 식감에 깜짝 놀랐는데, 이번에 먹은 안심도 그랬다. 아내랑 애들이랑 “역시 아빠는 고기를 정말 잘해”라며 폭풍칭찬을 해 줘서 어찌나 만족스럽던지...


참고했던 레서피 사이트: http://www.seriouseats.com/recipes/2016/07/sous-vide-pork-tenderloin-recipe.html 


수비드 온도에 따른 고기 느낌의 차이는 다음과 같다.

54도 - medium rare - 버터처럼 부드럽고 육즙이 아주 풍부함

60도 - medium - 탄탄하지만 연하고 육즙이 적절함

66도 - medium-well - 완전히 단단하고 육즙이 적절합

71도 - well done - 마르고 퍼석할 수 있음


글이나 사진만으로는 아쉽고, 실제로 만들어서 먹어봐야 하는데, well done 제외하면 다 고기가 조금 분홍색 기운이 돌기 때문에 시각적인 두려움을 안겨줄 수 있어서 일단은 66도, medium-well을 목표로 조리를 시작했다.


* 요즘은 여러 식당에서 핑크색이 도는 돼지고기, 닭고기, 오리고기 등을 많이 내놓고 있다. 많이들 기생충이나 세균 감염 등을 걱정해서 무서워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미국 농무부 산하 식품안전검사국(FSIS, USDA)에서 정해놓은 식품안전을 위한 조리온도 및 시간은 소고기, 양고기, 돼지고기 모두 63도, 3분이다. 63도 이상의 온도에서 3분 이상 조리하면 된다는 뜻이다. 더 낮은 온도에서도 충분히 시간이 길면 된다. FDA 기준 화씨 130도(섭씨 54.44도)에서 112분 이상, 화씨 140도(섭씨 60도)에서 12분 이상 조리하면 안전하다고 한다.  식품안전 관점에서 보자면 위의 표에서 rare에 해당하는 54도에서 조리한다면 (속까지 온도가 올라가는 시간을 감안해서) 3-4 시간 충분히 돌려야 하고, 66, 71도처럼 높은(?) 온도에서 요리한다면 45분에서 1시간 정도만 익혀도 충분할 것이다. 실제로도 조리시간은 온도가 올라갈수록 짧게 가져갈 수 있다.


수비드를 할 때도 오븐을 쓸 때와 마찬가지로 예열이 중요한데, 물 온도를 조리온도까지 올려놔야 한다. 오늘은 66도를 목표로 하고 있으니까 대강 끓인 물 3-4 리터 정도를 수비드 물통에 넣고 찬물을 부어서 온도를 대충 맞추면 된다. 처음부터 찬물 넣고 수비드 돌려도 되는데 그러면 시간이 좀 오래 걸린다. 물 양이 많으면 물 데우는 데만 30-40분 넘게 걸릴 수도 있다.


고기를 염지하면 육즙이 풍부해지긴 하지만 맛이 옅어진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수비드를 하는 경우에는 굳이 염지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이 있다. 특히 돼지고기는 염지했을 때 질감과 향이 햄에 가까워지는 특성도 있다고 한다. 위 링크의 글을 쓴 이는 염지를 하고 싶다면 염지액에 담그는 방식보다는 고기에 소금 뿌리고 싸서 냉장고에서 몇 시간 또는 밤새 보관하여 살짝 절이는 방식을 쓰면 육즙은 잘 가두면서 액상염지 방법을 썼을 때 맛이 옅어지는 문제는 피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 나는 염지를 전혀 하지 않고 요리를 시작했다.


조리 방법

1. 물을 원하는 온도로 예열한다.

2. 고기 겉에 후추와 소금을 뿌린다. 좀 많지 않나 싶을 정도로 충분히 뿌린다.

3. 비닐봉지에 담는다. 원한다면 허브 및 각종 양념들을 같이 넣는다. 올리브유도 넉넉하게 뿌려준다. (수비드로 돌리면 고기가 되게 부드러워지기 때문에 기름을 넉넉하게 넣어줘어 고기끼리 붙어서 고기가 엉뚱한 데서 찢어지는 걸 막을 수 있다. 물론 밀봉에도 도움이 되고 향도 좋아진다.) 진공포장기로 밀봉하거나 물에 담아서 밀봉한다. 나는 진공포장기가 없어서 집락을 쓰고 물에 담가 밀봉하는 방법을 쓴다.

4. 수비드로 익힌다. 최소 45분, 최대 4시간까지 괜찮다. 66도 정도면 1시간 반에서 두 시간도 충분하다.

5. 꺼낸 돼지고기를 키친타올로 닦는다. 겉의 물기를 최대한 제거해야 빠르게 겉을 익힐 수 있다. 비닐 봉지 안에 남아있는 액체는 나중에 소스 만들 때 쓴다.

6. 고기 겉을 익힌다. 팬에 식용유를 1 tbsp 정도 두르고 기름이 끓을 때까지, 또는 연기가 날 때까지 강한 불로 가열한다. 고기를 넣고 겉면이 모두 고르게 갈색으로 익도록 겉을 익힌다. (이런 용도로 주물팬이 최고다.) (총 2-3분 정도) 속은 어차피 다 익었으니까 겉만 바삭하게, 먹음직스럽게 보이도록 익히면 충분하다.

7. 겉이 다 익어갈 무렵 버터 1 tbsp과 각종 향신료(샬롯, 마늘, 타임, 오레가노 등. 그냥 말린 것 뿌렸는데 먹을만 했다.)를 얹어준다. 숟가락으로 녹은 버터와 향신료를 고기 위에 올려준다. 총 45초 정도 해 주면 된다. 돼지고기를 적절한 망 같은 데 올려놓고 팬에 남은 액체를 그 위에 부어준다.

8. (소스 만들기; 소스 안 쓸 거면 생략 가능) 고기를 구운 팬에 다진 샬롯(없으니까 양파로 대체하자) 1 tbsp 넣고 15초 정도, 향이 나도록 볶는다. 드라이 화이트 와인이나 vermouth 1컵 넣고 반으로 졸아들 때까지 끓인다. 통겨자, 수비드 비닐봉지에 들어있던 육즙, 버터 1 tbsp을 추가한다. 걸쭉해질 때까지 잘 저어주고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한다. 나는 대충 양파, 맛술, 소금, 후추, 밀가루 넣고 걸죽하게 익혀서 냈는데 고기에 비해 소스는 좀 별로였다. 임팩트 있게 썬 고기 위에 굵은 소금만 살짝 뿌려서 내도 충분히 훌륭할 것 같다.

9. (서빙) 향신료는 제거하고 고기를 썰어서 낸다. 소스를 스푼으로 덜어서 올리거나 굵은 소금을 위에 뿌려서 내면 된다.


1 kg을 했더니 식구들 모두 행복하게 먹고 좀 남아서 다음 날 아침에 얇게 썰어 빵 사이에 끼워 샌드위치도 해 먹고 그랬는데, 그것도 아주 좋았다. 햄 비싸니까 안심이나 등심, 또는 뒷다리살을 염지하고 수비드로 익혀서 햄 대신 쓰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liquid smoke 같은 거 사서 좀 넣고 수비드해도 좋을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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