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가 너무 많아 터보트레이너로 운동을 좀 하겠다고 자전거를 거실에 옮겨놨다. 막내가 자전거 만지다가 다치거나 할까봐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가끔씩 바퀴를 손으로 돌려서 손이 좀 더러워지는 거 빼면 큰 문제는 안 생기고 있다. 근데 자전거를 빨래 건조대 대용으로 쓰면서 빨래가 체인에 닿아 시커먼 기름이 묻는 일이 몇 번 있고 나니 이왕 이렇게 된 거 체인 청소나 하자는 생각이 들어 어제 자전거 체인 청소에 도전했다. 2014년 여름 자전거를 산 이후로 체인을 풀어서 청소한 적이 한 번도 없고, 특별히 험한 데서 타진 않았지만 체인이랑 체인링, 스프라켓을 꼼꼼히 관리하지 않으면서 습식 체인 오일을 많이 썼더니 오일과 이물질이 섞여 엄청나게 찐득하고 새까맣게 된 구두약에 흙 비벼놓은 것 같아 보이는 오염물이 체인 전체를 덮고 있었다.


손이 기름으로 뒤덮여 너무 더러워서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지 못했다. 사진 없이 글로만 남기려니 많이 아쉽다. 다음에는 아들 불러서라도 사진 찍어서 남기리...


준비물:

체인을 세정액에 담가둘 적당한 플라스틱통 - 두부 두 모 들어가는 두부 포장 플라스틱통 사용.

버릴 칫솔

플라이어 - 체인링크 풀 때 사용

체인 잡는 고리 - 체인 링크를 풀거나 체결할 때 양쪽을 잡아서 당겨줘야 한다. 손이 모자라니까 고리로 잡아줘야 하는데, 파는 것도 있지만 그냥 철사 옷걸이 하나 끊어서 구부려서 만들었다. (참고: http://blog.naver.com/jun18th/220739302056)

오렌지 세정제 - 누군가가 비교기를 올렸는데 석유 같은 것보다 오렌지 세정제가 효과가 더 좋다고 해서 오렌지 세정제 사용. 등유 사러 주유소 가기도, 세정 끝난 등유 버리러 다시 어디 가기도 귀찮았다.


첫 단계는 체인 링크 풀기. 인터넷에서 대충 찾아보니 체인링크를 잡아 누르면 구멍이 큰 안쪽으로 밀려가면서 쓱 빠지는 것 같아서 대충 세게 누르면 되겠거니 했는데, 영 안 된다. 손에 찐득한 기름 잔뜩 묻히고 한참을 고생하며 전용도구를 사야 하나 고민하다가, 손 씻고 핸드폰을 검색핬다. http://www.coolwarp.net/1074 이 글을 보니 두 체인 링크를 플라이어의 서로 반대편 날에 걸고 눌러주면 허무하게 툭 빠진다길래 해 보니 호... 정말 그렇다. 역시 기술을 배워야 해.


체인을 잘 풀어서 플라스틱 통에 넣고는 오렌지 세정제를 팍팍팍팍 뿌려서 체인을 담그고 칫솔로 문지르고 통을 흔들어 찌든 때를 녹여내는 작업을 여러 번 반복했다. 세 번째 정도 뿌린 후에는 그대로 담가놓고 크랭크 체인링과 스프라켓, 앞 뒤 드레일러와 풀리 등을 물티슈로 청소했다. 체인을 뺀 상태로 하니까 훨씬 수월했다. 풀리 둘 중 하나는 손가락으로 돌리면 한참동안 잘 도는데 다른 하나는 돌릴 때 큰 저항감은 없지만 휙 돌리면 금방 멈춘다. 나중에 체인청소할 때 한 번 분해해서 속에 있는 베어링을 점검해볼 필요도 있을 것 같다. 다시 찾아보니 둘 중 위쪽에 있는 건 가이드 풀리, 아래쪽에 있는 건 텐션 풀리라고 하는데 가이드 풀리는 체인 위치를 잡아주는 역할을 하며 원래 아주 잘 돌아가야 하는 건 아니라고 한다. 물론 고급 제품에서는 둘 다 실드 베어링을 써서 잘 돌아가겠지만, 텐션 풀리만 잘 돌아가면 큰 문제는 없는 모양이다. 괜히 쓸 데 없는 데 신경 쓸 뻔했구나. 아, 애초에 이런 데 신경을 썼던 것 자체가 좀 쓸 데가 없는 건가? 


스프라켓을 속시원하게 씻어내지 못해서 아쉽긴 하지만 베란다에서 자전거 세차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이만하면 만족한다. 제대로 하려면 물 살살 뿌려가면서 세정제로 팍팍 씻어낼 수 있는 마당이 있는 집이 필요할 것 같다. 스프라켓 청소를 하다가 예전부터 빼고 싶었던 스프라켓 안쪽 플라스틱 보호대를 없앤다고 또 쇼를 했다. 나도 예전에는 이 플라스틱이 꼭 필요한 부품인 줄 알았는데, 없어도 되는 거라고 해서 없앨까 생각도 했지만 귀찮아서 안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몇 군데 부러뜨리면 쉽게 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해 보니 그게 아니었다. 또 찾아보니 그거 하다가 스프라켓이나 스포크 상하느니 그냥 두는 게 낫다는 얘기도 보였다. 이미 일부분을 지저분하게 부러뜨려놓은 후라 이대로 둘까 잠시 고민을 하다가 오기를 내서 다시 시작. 일자 드라이버로 스프라켓과 스포크 안 상하게 잘 힘을 가해서 몇 군데 부러뜨려서 겨우 다 제거했다. 제거하고 나니 자전거가 좀 더 고급져 보인다. 


오렌지 세정제에 담가놨던 체인은 물에 여러 번 깨끗하게 헹궈내고, 몇 번 털어서 물기를 빼고 키친타올로 꾹꾹 눌러 다시 한 번 물기를 제거했다. 다시 체인링크 채우고 건식 테플론 오일을 발라주고 크랭크 한참 돌리면서 기어 바꾸고 하면서 상태를 체크하고 오일을 골고루 묻혔다. 키친타올로 남은 오일을 닦아냈는데, 스프라켓에 남아있던 기름때가 다시 좀 녹아서 체인에 묻기 시작한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다음에는 스프라켓 공구를 사다가 스프라켓을 분해해서 청소해볼지, 아니면 그냥 뒷바퀴만 빼서 욕조 가서 오렌지 세정제 뿌리고 샤워기로 물 살살 뿌려서 청소를 해 볼지 생각 중이다. 스프라켓 분리 자주 하는 것도 아닌데 몇 만원 주고 공구 사기가 부담스러우니까.


그리고 다음에는 꼭 면장갑이라도 끼고 작업해야겠다. 더러운 오일 손에 잔뜩 묻었는데 오렌지 세정제로도 쉽게 지워지지 않아 아직 손 끝이 시커멓다. 손톱 밑에도 새까맣게 때가 껴 있어서 땅거지가 된 느낌이다. 독한 오렌지 세성제를 맨손에 잔뜩 뿌려대서 피부가 상한 것 같아 보습제를 열심히 바르고 잤는데도 아침에 일어나 보니 손이 거칠거칠한 느낌이다.


처음으로 체인을 분리해서 청소하다 보니 거의 2-3시간은 걸린 것 같다. 웬만하면 청소 안 하고 다시 2-3년 타면 좋겠지만, 다시 청소를 하게 되는 날이 오더라도 다음 번에는 훨씬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청소할 수 있을 것 같다. (익숙해지면 1시간이면 충분할 것 같다) 로드보다 훨씬 더러운, 옛날에 산 철티비도 체인을 청소해야 하는데, 큰애가 그 철티비를 자주 타게 될 것 같으니 조만간 체인 청소에 재도전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