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농사를 짓기에 그다지 좋은 곳이 아니다. 일단 사계절이 뚜렷하기 때문에 연교차도 크고 키울 수 있는 작물에 제약도 많다. 여름은 엄청 덥고 겨울은 엄청 추워서 작물을 기를 수 있는 기간도 짧고, 여름에는 수시로 태풍이나 집중호우 같은 것 때문에 수해를 입는다. 차라리 물만 확보할 수 있다면 사막이 농사 짓기에 더 좋을 것 같다.


광원만 괜찮은 게 있다면 식물공장을 만들어서 실내에서 외부 환경에 휘둘리지 않고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 실제로 일본의 일부 기업에서 사업화를 시작한지 좀 됐다. LED 광원 가격이 엄청나게 떨어지면서 매우 높은 효율로 조명을 할 수 있게 됐고, 솔라셀 가격도 떨어져서 솔라셀로 발전소를 만들고 그 전력으로 식물에 빛을 공급하면 순수하게 탄소를 흡수하기만 하는 공장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탄소배출권 장사하기에 매우 좋은 사업이겠다) 우리나라에서도 일부 대기업이 시도했으나 농민단체의 반대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 같다. ㅠㅠ


어떤 사람들은 무농약 유기농 채소 같은 걸 먹고 싶어서 집에서 채소를 기르는 것 같은데 난 솔직히 그런 데는 별 관심이 없다. 농약이나 화학비료가 없었다면 인류의 삶의 질은 여전히 매우 끔찍했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굳이 유기농을 고집한다거나 그런 스타일이 아니다. 정말 순수하게 호기심과 식자재비 절감을 위한 일일 뿐이다. 


(식자재비 절감을 위해서라면 술을 제일 먼저 담가 먹어야 할 것 같긴 한데...ㅠㅠ)


어쨌든, 이런저런 이유로 몇 년 전부터 식물공장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식물공장을 하려면 당연히 수경재배 방법을 쓰게 될 텐데, 마침 가정용 베란다 수경재배 DIY 키트를 파는 데를 찾았다. 몇 년 전부터 블로그에 수경재배 실험 결과 등을 올리던 분인 것 같은데, 쌓인 경험을 바탕으로 본격적으로 수경재배용품 파는 사업을 시작한 듯하다.


참쉬운 수경재배: http://www.easyhydro.co.kr/


여기서 행거에 설치할 수 있는 이동형 수경재배 키트를 주문했다. 3단으로 총 48개의 조그만 화분에 식물을 재배할 수 있는 키트인데, 일단은 우리 식구들이 제일 즐겨먹는 샐러드용 채소 중 하나인 로메인 상추를 집중공략해 볼 생각이다. 일반 상추에 비해 구하기가 어렵운 채소이기도 하고, 비싸서 직접 키웠을 때 이득이 크기도 하고, 쌈으로 먹어도 좋고 샐러드로 먹어도 좋고 샌드위치에 넣어 먹어도 좋은 다용도 채소이기도 해서 장점이 많다.


우리나라 로메인 가격이 대략 한 개에 3000원이 좀 안 되는 것 같다. (한 뿌리를 200 g 정도로 잡았고, 1 kg에 14500원 정도에 파는 경우로 계산함) 내가 주문한 수경재배 키트가 동시에 48뿌리를 키울 수 있으니 한 바퀴 돌리면 144000원, 대충 두 번 돌리면 설치비 나올 듯. 너무 낙관적인 예측인가?


베란다가 남향이라 아직은 별 걱정은 안 하는데, 강한 햇빛을 충분히 받는 게 중요하다고 한다. 아무래도 베란다 통유리가 닦기 힘들어서 지저분하기도 하니 광량이 좀 안 좋을 수 밖에 없다. 이제 가을 겨울 되면 광량이 더 부족해질 것 같아서 보완이 필요하긴 할 것 같다. 그래서 LED를 알아보았다. 참쉬운 수경재배에서 LED 광원도 팔긴 하는데, 좀 많이 비싸다. 5050 SMD LED 72개 달린 1 m 짜리 LED strip 네 개 달아서 무려 194,000원에 판다. 이걸 세 층에다가 모두 달면 LED 값만 60만원에 달한다. 물론 LED strip이 식물 재배용 광원(미국 드라마 같은 데서 지하실에서 대마초 키울 때 쓰는 것 같은 빨간색 파란색 섞인 빛)에 맞게 빨간색, 백색, 청색 LED를 섞은 형태의 주문제작품인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너무 비싸다. 어차피 충분히 밝으면 백색광도 괜찮기 때문에 그냥 자작해서 쓰기로 했다. 이베이에서 (적색 쪽을 더 많이 흡수하기 때문에 색온도가 낮은 게 유리한 것 같아서) 따뜻한 흰색(백열전구랑 비슷한 색) 5630 SMD LED가 36개 달린 50 cm 짜리 LED strip을 20개 들이 한 팩 주문했다. 중국에서 발송되고 무료배송이긴 하나 배송에 거의 한 달 걸릴 듯하다. 근데 가격은 43불 정도. 5630 LED는 5050 LED에 비해 광량이 거의 2-3배에 달하기 때문에 50cm 두 개씩 이어서 1 m 짜리를 만들어서 장착하는 형태로 하면 20개 중에서 12개만 쓰면 내가 주문한 3단 구성에 빛을 충분히 공급할 수 있다.


(전문가의 조언을 들어보니 식물들이 적색 청색 광원 하에서 훨씬 빠르게 자란다고 한다. 광합성을 하는 엽록소의 흡수 스펙트럼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초록색에 해당하는 빛은 엽록소에서는 거의 쓰지 않는다. 대신 적색 청색 빛만 쓸 때는 예를 들어 토마토의 라이코펜 같은 영양성분의 함량이 떨어질 수도 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채소별 최적 파장 조합에 대한 연구도 많이 이뤄졌다고 한다. 성장 속도를 빠르게 하는 게 주 목적이 아니라면 태양광에 가까운, 연색지수 CRI가 100에 가까운 LED를 쓰는 게 좋다고 한다.)


(재배등 용도로 적색:청색=3:1로 혼합된 재배용 LED 스트립도 주문했다. 마찬가지로 이베이에서 샀고, 중국 발송이고 배송료가 없지만 배송해서 받을 때까지 오래 걸린다. 50 cm 짜리 20개에 총 69.33불. 나중에 백색광이랑 적청광이랑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여기에다가 주변광+LED광의 합이 거의 일정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자동으로 제어를 하고, 정해진 시간에 불이 켜지고 꺼지게 조절하는 기능을 arduino나 raspberry pi로 구현해서 장착해 볼까 생각중이다. 식물을 계속 키우다 보면 아마 배양액 양도 줄고, 농도도 변할 텐데, 좀 오버스럽지만, 배양액의 농도(보통 전기전도도로 측정함)와 수위를 측정해서 필요한 만큼 물을 보충하고 배양액 원액을 보충하는 (이건 수도꼭지나 맹물통에 연결된 솔레노이드 밸브를 조절하고 간단하게 자작한 주사기 펌프를 제어하는 방식으로 구현하면 될 듯) 제어기능도 구현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상황을 간단한 웹 서비스를 통해 바로바로 대시보드 같은 걸로 보여주는 것도 좋을 것 같고, 저렴한 웹캠 같은 걸로 원격 모니터링도 할 수 있게 해 놓아도 좋을 것 같고...


애초에 주말농장을 한다든가 실내에 화분을 놓고 채소를 키우는 데는 별로 끌리지 않은 이유는 1. 내 성격상 주말마다 (주중에도 종종) 밭에 가서 일하는 걸 꾸준히 할 것 같지 않은 데다가 2. 날씨라든가 병해, 충해 등 내가 쉽게 제어하기 힘든 요인 때문에 타격을 받는 게 정말 싫기 때문이다. 신과 옷, 기구에 묻은 흙 청소도 만만치 않은 일이고, 흙을 쓰다 보면 필히 잡초나 벌레 같은 게 따라올 수 밖에 없고... 수경재배는 이런 문제는 별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씨앗으로 싹 내서 그걸 수경재배하니 흙을 볼 필요가 없고, 그냥 아파트 베란다에서 하니까 막내 정후만 빼면 크게 사고가 터질 일도 없다. 시스템을 잘 갖춰 놓으면 처음에 싹을 틔워서 수경재배기에 옮겨놓고 나면 별로 손이 가지 않는다는 것도 어마어마한 장점이다.


그리고 장비를 구축하고 그 장비로 실험을 하는 것과 비슷한 면이 많기 때문에 내 체질에 잘 맞는 것 같다. 처음에 시스템 구축하는 것도 힘들지만 재미있고, 내가 좋아하는 일이기도 하고, 그 후에 계속해서 디버깅하고 업그레이드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유지비로 가장 비싼 건 아마 전기일 것 같은데, LED 조명(5630 SMD LED 36개짜리가 평균 7 W 먹고 그걸 12개 쓰니까 84W. 소형 SMPS 효율이 얼마 정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대충 안전빵으로 50% 언저리 잡아서 LED 조명 및 arduino 구동 등에 200W 쓴다고 쳐 보자)을 풀로 하루에 12시간씩 켜 놓는다고 치면 한 달에 72 kWh 정도 사용한다. 이 정도면 보통 냉장고 한 대가 한 달에 잡아먹는 전력량하고 비슷하다. 생각보다는 크네. 물론 햇빛에 따라서 확 달라질 수 있으니 실제 소모량은 다시 좀 따져봐야 할 것 같다. 24시간 돌려야 하는 배양액 순환용 펌프도 20W * 24시간 * 30일 하면 대략 14.4 kWh 나오니까 이것도 은근 전력을 먹긴 한다. 본격적으로 하는 사람이라면 농업용 전력을 쓰면 매우 저렴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아이들하고 같이 장비를 만들고 시스템 구축하는 과정이 재미있을 것 같다. 식물을 기르면서 관찰할 수 있기도 하고, 아두이노 같은 걸로 하드웨어도 구성하고 소프트웨어도 만들면서 재미있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 Recent posts